• 최종편집 2020-01-2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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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동체로 지역사회와 외국인주민을 잇는 ‘엉묘진’ 반장(2)
      ▲‘2018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 자료집 국내 최고의 외국인주민 인권 옹호 기관인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소장 오경석)는 지난해 12월 ‘2018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경기도, 우리에게 맡겨요’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에 가득 차 있는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기 위해 기획됐다. 사회 문화적으로 낯선 이주의 공간에서, 길지 않은 시간에,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외국인주민을 발굴해 소개하는 작업은 우리 곁의 이주민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일곱 명의 이주민들을 따라가 보자. #어려움 속, 짧은 시간, 이룬 게 많으시네요. : 그냥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엉묘진은 2년여, 그러니까 한국 생활의 거의 절반 정도는 ‘눈물이 날 정도로’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 그리고 짧은 시간에, 그가 이룬 성취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일단 그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미얀마 양곤에서 의상 사업을 시작했다. 미얀마의 전통 의상을 디자인하고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을 한다. 현재 3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매니저는 동생이다. 사업을 시작한 지는 2년 정도인데 “어느 정도 잘 되고” 있는 중이다.   그는 한국에서 직접 디자인 보내는 일을 한다. 그리고 ‘미얀만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플랜’을 짜는 일도 그의 몫이다. 그는 앞으로 이 사업을 ‘더 크게’ 키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인 성취와 전망 이외에 비영리 영역 곧 사회적 참여와 기여라는 분야에서도 그의 성취는 괄목할 만하다. 어려서부터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엉묘진이지만, 누군가를 돕는 일을 체계적으로 해 본적 역시 없는 그였다.    한국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공간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경험한 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공동체’ 활동을 꼽는다. 어려움에 처한 “미얀마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보람 있었다.”고 자부한다.    불법체류자 단속에 억울하게 희생될 뻔한 동료 노동자를 다양한 관계기관과 주한 미얀마 대사관과의 협업을 통해 구제한 일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신의 어려움이 반복되지 않게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의 활동을 통해 평택에 미얀마 사원과 쉼터가 설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얀마 현지에 NGO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사회적 기업가’라는 자신의 새로운 꿈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가 한국에서 이룬 또 하나의 성취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전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에게 한국은 오기 싫었을 뿐만 아니라, 시련과 어려움의 공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5년여의 한국 생활은 그러한 그의 생각을 바꿔주었다. 이제 그에게 한국의 어느 도시는 고향처럼, 혹은 고향보다 더욱 좋은 곳이다.   “평택도 미얀마처럼 좋아하는 도시에요. 우리 어렸을 때 사는 고향보다 좋아해요.”   꾸준함은 용감함을 필요로 해요 : 맨 처음 왔을 때부터 한 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흔히 한 곳에 정주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은 정적이거나 경쟁력이 떨어진다(선택지가 적다)고 생각하기 쉽다. 현재 엉묘진의 직장은 그가 한국에 입국해 첫 입사한 첫 직장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4년 10개월간 그는 단 하나의 직장에서만 종사한 셈이다. “한국에 맨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첫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어요.”   그러나 그는 결코 무력하거나 정적이거나 순응적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4년 10개월을 한 직장에서 근무한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 정부가 이러저러한 재취업의 기회를 주고 있음에도, 주저 없이 미얀마 귀환을 선택하는 것이 그였듯이, 별로 좋은 조건이 아님에도 한 회사를 선택하는 것도 그다.   “이 회사는 연장이나 야간 휴일근로가 전혀 없어서 생각보다 돈을 적게 벌어요.”   한 회사에 꾸준히 근무함으로써, 돈을 좀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두 가지다. 사회 활동과 자기 계발이다.   잔업이나 휴일 근무를 안 함으로써 생기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을, 그는 결코 여흥이나 유흥의 시간으로 보내지 않았다. 한국어 공부와 이주노동 관련 법 공부에 전념했다.   “한국말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한국말 잘하고, 법도 배운다면, 70% 정도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고, 저보다 더 고생하는 불쌍한 사람들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사회 활동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공동체와 쉼터를 만들었고, 주말마다 동료들과 거리 청소를 함께 했다. 그 결과 그는 돈으로 구할 수 없는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한 가지는 사회자본, 곧 신뢰다. 그는 친구가 많다.    몇 달 뒤 미얀마 귀환을 앞두고 있는 그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사람만도 15명에 이른다. 다른 한 가지는 차별에 대항하는 능력이다.   엉묘진의 회사에는 근로자들을 홀대하는 ‘난폭한’ 한국인 관리자가 종사한다. 엉묘진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의 부당한 지시나 언행에 담대하게 맞선다. 어느 순간부터 관리자는 더 이상 엉묘진을 괴롭히지 않는다. 꾸준한 사람이 되려면,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을, 엉묘진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 관리자가 4년 10개월 동안 계속 있었어요. 지금은 저한테는 시키지 않아요. 저도 안하고.” #돈이 전부는 아니죠. :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피곤하지 않았어요. 엉묘진은 한국에 입국한 지 불과 1년만인 2015년 4월 미얀마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100명 이상의 회원이 참가하였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엉묘진의 공동체는 한국의 미얀마 공동체들 가운데서도 ‘모범적으로 운영’ 되는 곳으로 평가받는다.    공동체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회원들의 경조사를 챙기고, ‘10월 부추제’와 같은 미얀마 전통 축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회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미얀마 사람들의 삶의 구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원 겸 쉼터도 운영한다.   공동체 활동은 회원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주말 거리청소 등 지역 봉사에 참가한다. 2015년 미야우리 지역에 홍수가 났을때는 8백만원 정도의 피해 구제 기금을 마련해 지원한 적도 있다.    미얀마 낙후 지역의 고아 및 한부모 가정 자녀들을 위한 보육원 지원 활동도 수행한다. 어린이 도서관과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는 쉬바다이 NGO설립도 공동체 활동이 매개가 되었다. 공동체 창립의 과정은 엉묘진 개인의 열정과 의지에 크게 의존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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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2019-12-04
  • 한국의 이주민 사회 ‘한국에 있는 다양한 외국인주민들’
    1. 결혼이민자   (6)이혼 및 사별로 미성년자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결혼이민자(F-6-2) 그 다음해부터는 수시로 시어머니 집을 찾아 아들을 만나고 있다는 증거로 시외버스표를 증거물로 모으라고 하였으며 아울러 방문할 때마다 아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보관한 후 아들 명의로 매월 30만원씩의 적금 통장을 만들어 향후 양육비 저축 근거를 바탕으로 비자연장 할 때마다 이 모두를 증거물로 제시하여 비자를 연장 받은바 있다.   그렇게 7~8년에 걸쳐 비자를 연장받다보니 시어머니의 노환과 함께 건강이 나빠지면서 시어머니 스스로 손자를 데려가라고 하여 N여성은 최근에 와서야 아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살게 되었다.   비로소 N여성은 최근에서야 거주지 주민센터에 한 부모가정으로 등록하고 모자의 정을 느끼며 뒤늦게 귀화신청을 하고 현재 귀화 허가를 기다리는 중에 있다.   이와 같이 혼자 산다는 것 자체도 외롭고 힘든 시간들인데 체류 자격 비자연장으로 인하여 더욱더 많은 마음에 상처를 받는 한 부모가정 결혼이민자들도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매년 똑같은 체류자격으로 비자연장을 하지만 매년 똑같은 서류를 제출해야만 하는 것 까지도 이해를 하는데 담당 창구직원 이 바뀌게 되면 또 다시 과거사에서부터 현재 일까지 심문 조사 받듯이 실태조사를 거치면서 비자연장 여부가 결정되는 참으로 답답한 출입국민원이 반복되면서 한 부모 가정의 이주여성들의 고통과 아픔이 더해지고 있다.   법무부는 특별한 사안이 없는 이들에게는 비자연장 시 간소화 할 수 있는 제도적 행정지원 장치가 시급하다고 본다. 이로서 법무부 관계자분들은 이와 같은 사례를 종합하여 이주민들의 고충에 대하여 한번쯤 심도 있게 논의해 봤으면 한다.   또 다른 사례로 B국의 D여성은 경북지역 어느 시골마을에 사는 노총각과 혼인을 하고 아들하나를 출산하고 살았으나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까운 이주여성 긴급센터의 도움을 받고 남편의 귀책사유로 이혼을 하고 4살 난 아들을 동반하고 부천지역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러나 이혼한 남편이 아들을 찾아 올까봐 거주지 주소를 비공개 신청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혼 한지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들의 호적을 엄마와 같은 주소지로 옮겨놓지 못하고 이웃지인의 집에 양해를 구하고 그 집에 동거인으로 올려놓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B국의 D여성은 이혼남편의 학대와 폭력으로 대인기피증까지 있어서 초기에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기관에서 상담을 시도하였으나 말문을 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번역사를 통하여 신뢰와 믿음을 심어주고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한 후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고 아울러 친정어머니도 초청하여 외로움을 극복하며 아들과 함께 어느 정도 안정된 정착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아들 하나만 데리고 홀로 가정경제를 꾸려야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아시아마트를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얼마간 여유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아들이 벌써 성장하여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법무부는 친정어머니 초청과 체류를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아 또 다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법무부 출입국관리법 지침에는 이와 같은 경우 친정부모 초청과 체류가 더 이상 안 되는 줄 알고 있지만 B국의 D여성의 경우는 특별한 사유로서 인도주의적 차원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결혼이주여성으로서 이혼남편의 학대와 폭력으로 대인기피증까지 앓았던 B국의 D여성의 경우 그동안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이제 겨우 정신적,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았는데 또 다시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은 D여성에게 있어서는 삶에 안정과 행복권을 빼앗아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D여성의 친정어머니는 법무부지침과 관계없이 인도주의 차원에서 체류자격을 부여해 주는 것이 마당하다고 생각하여 법무부에 체류자격 연장신청을 특별히 상신하여 최근에는 다문화 가정 자녀가 만 7세가 될 때까지와 한 부모가정이나 자녀가 장애 아동일 경우는 친정부모 초청과 체류기간을 예외로 하는 지침과 시행령(2018. 4. 2.)이 이루어졌다.   이에 D여성은 크게 한숨 돌리며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열심히 아시아마트를 운영하면서 아들을 잘 키우겠다고 하면서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이와 같이 이민자들의 이혼 및 사별로 인하여 한 부모가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경제적 정신적 고통에 플러스 로 체류자격과 친정부모초청까지 어려움을 안고 있는 이들에게 좀 더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요구되고 있다. (7)귀화자 및 영주권자 이혼 및 사별 후 재혼가정(F-6-1) 귀화신청 자격에 있어서 결혼이민자는 2년 이상 기타 일반귀화자는 5년 이상 거주기간이 경과된 자로서 결혼이민자는 3천만원 이상 일반귀화자는 6천만원 이상의 재산과 관련 소득증빙과 한국어 언어능력을 갖춘 후 귀화신청을 하여 귀화허가를 받고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을 귀화자라고 한다.   영주권자 역시 귀화자와 같은 자격을 갖추고 영주권신청을 하여 영주자격을 부여받은 사람을 영주권자(F-5)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에 안정된 체류와 거주권을 가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귀화자는 과거 자국민이나 제3국의 배우자를 만나 재혼을 함으로서 귀화자의 배우자는 국민의 배우자 자격으로 F-6 비자를 취득하게 되고 영주권자의 배우자는 F-2 비자를 취득하게 되어 모두 다 안정된 체류자격을 갖게 된다.   이로 인하여 국내에 불안전한 체류자격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들 중 특히 미등록자 외국인들은 귀화자 이혼녀나 이혼남을 만나는 것은 안전한 체류자격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황금 열쇠를 만나듯이 인기 있는 결혼 상대자이다.   영주권자 역시 귀화자와 마찬가지로 체류자격이 불안전한 외국인들은 영주권자와 혼인함으로서 안정된 비자를 받기 때문에 이들과의 혼인을 매우 선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호에 계속, ‘한국의 이주민 사회’ 서점 판매 중>   야스미디어
    • 외국인주민
    • 비자 Visa
    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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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 자료집 국내 최고의 외국인주민 인권 옹호 기관인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소장 오경석)는 지난해 12월 ‘2018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경기도, 우리에게 맡겨요’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에 가득 차 있는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기 위해 기획됐다. 사회 문화적으로 낯선 이주의 공간에서, 길지 않은 시간에,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외국인주민을 발굴해 소개하는 작업은 우리 곁의 이주민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일곱 명의 이주민들을 따라가 보자. #어려움 속, 짧은 시간, 이룬 게 많으시네요. : 그냥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엉묘진은 2년여, 그러니까 한국 생활의 거의 절반 정도는 ‘눈물이 날 정도로’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 그리고 짧은 시간에, 그가 이룬 성취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일단 그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미얀마 양곤에서 의상 사업을 시작했다. 미얀마의 전통 의상을 디자인하고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을 한다. 현재 3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매니저는 동생이다. 사업을 시작한 지는 2년 정도인데 “어느 정도 잘 되고” 있는 중이다.   그는 한국에서 직접 디자인 보내는 일을 한다. 그리고 ‘미얀만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플랜’을 짜는 일도 그의 몫이다. 그는 앞으로 이 사업을 ‘더 크게’ 키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인 성취와 전망 이외에 비영리 영역 곧 사회적 참여와 기여라는 분야에서도 그의 성취는 괄목할 만하다. 어려서부터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엉묘진이지만, 누군가를 돕는 일을 체계적으로 해 본적 역시 없는 그였다.    한국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공간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경험한 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공동체’ 활동을 꼽는다. 어려움에 처한 “미얀마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보람 있었다.”고 자부한다.    불법체류자 단속에 억울하게 희생될 뻔한 동료 노동자를 다양한 관계기관과 주한 미얀마 대사관과의 협업을 통해 구제한 일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신의 어려움이 반복되지 않게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의 활동을 통해 평택에 미얀마 사원과 쉼터가 설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얀마 현지에 NGO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사회적 기업가’라는 자신의 새로운 꿈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가 한국에서 이룬 또 하나의 성취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전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에게 한국은 오기 싫었을 뿐만 아니라, 시련과 어려움의 공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5년여의 한국 생활은 그러한 그의 생각을 바꿔주었다. 이제 그에게 한국의 어느 도시는 고향처럼, 혹은 고향보다 더욱 좋은 곳이다.   “평택도 미얀마처럼 좋아하는 도시에요. 우리 어렸을 때 사는 고향보다 좋아해요.”   꾸준함은 용감함을 필요로 해요 : 맨 처음 왔을 때부터 한 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흔히 한 곳에 정주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은 정적이거나 경쟁력이 떨어진다(선택지가 적다)고 생각하기 쉽다. 현재 엉묘진의 직장은 그가 한국에 입국해 첫 입사한 첫 직장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4년 10개월간 그는 단 하나의 직장에서만 종사한 셈이다. “한국에 맨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첫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어요.”   그러나 그는 결코 무력하거나 정적이거나 순응적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4년 10개월을 한 직장에서 근무한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 정부가 이러저러한 재취업의 기회를 주고 있음에도, 주저 없이 미얀마 귀환을 선택하는 것이 그였듯이, 별로 좋은 조건이 아님에도 한 회사를 선택하는 것도 그다.   “이 회사는 연장이나 야간 휴일근로가 전혀 없어서 생각보다 돈을 적게 벌어요.”   한 회사에 꾸준히 근무함으로써, 돈을 좀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두 가지다. 사회 활동과 자기 계발이다.   잔업이나 휴일 근무를 안 함으로써 생기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을, 그는 결코 여흥이나 유흥의 시간으로 보내지 않았다. 한국어 공부와 이주노동 관련 법 공부에 전념했다.   “한국말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한국말 잘하고, 법도 배운다면, 70% 정도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고, 저보다 더 고생하는 불쌍한 사람들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사회 활동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공동체와 쉼터를 만들었고, 주말마다 동료들과 거리 청소를 함께 했다. 그 결과 그는 돈으로 구할 수 없는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한 가지는 사회자본, 곧 신뢰다. 그는 친구가 많다.    몇 달 뒤 미얀마 귀환을 앞두고 있는 그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사람만도 15명에 이른다. 다른 한 가지는 차별에 대항하는 능력이다.   엉묘진의 회사에는 근로자들을 홀대하는 ‘난폭한’ 한국인 관리자가 종사한다. 엉묘진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의 부당한 지시나 언행에 담대하게 맞선다. 어느 순간부터 관리자는 더 이상 엉묘진을 괴롭히지 않는다. 꾸준한 사람이 되려면,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을, 엉묘진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 관리자가 4년 10개월 동안 계속 있었어요. 지금은 저한테는 시키지 않아요. 저도 안하고.” #돈이 전부는 아니죠. :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피곤하지 않았어요. 엉묘진은 한국에 입국한 지 불과 1년만인 2015년 4월 미얀마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100명 이상의 회원이 참가하였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엉묘진의 공동체는 한국의 미얀마 공동체들 가운데서도 ‘모범적으로 운영’ 되는 곳으로 평가받는다.    공동체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회원들의 경조사를 챙기고, ‘10월 부추제’와 같은 미얀마 전통 축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회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미얀마 사람들의 삶의 구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원 겸 쉼터도 운영한다.   공동체 활동은 회원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주말 거리청소 등 지역 봉사에 참가한다. 2015년 미야우리 지역에 홍수가 났을때는 8백만원 정도의 피해 구제 기금을 마련해 지원한 적도 있다.    미얀마 낙후 지역의 고아 및 한부모 가정 자녀들을 위한 보육원 지원 활동도 수행한다. 어린이 도서관과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는 쉬바다이 NGO설립도 공동체 활동이 매개가 되었다. 공동체 창립의 과정은 엉묘진 개인의 열정과 의지에 크게 의존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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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04
  • 한국의 이주민 사회 ‘한국에 있는 다양한 외국인주민들’
    1. 결혼이민자   (6)이혼 및 사별로 미성년자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결혼이민자(F-6-2) 그 다음해부터는 수시로 시어머니 집을 찾아 아들을 만나고 있다는 증거로 시외버스표를 증거물로 모으라고 하였으며 아울러 방문할 때마다 아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보관한 후 아들 명의로 매월 30만원씩의 적금 통장을 만들어 향후 양육비 저축 근거를 바탕으로 비자연장 할 때마다 이 모두를 증거물로 제시하여 비자를 연장 받은바 있다.   그렇게 7~8년에 걸쳐 비자를 연장받다보니 시어머니의 노환과 함께 건강이 나빠지면서 시어머니 스스로 손자를 데려가라고 하여 N여성은 최근에 와서야 아들을 데리고 와서 함께 살게 되었다.   비로소 N여성은 최근에서야 거주지 주민센터에 한 부모가정으로 등록하고 모자의 정을 느끼며 뒤늦게 귀화신청을 하고 현재 귀화 허가를 기다리는 중에 있다.   이와 같이 혼자 산다는 것 자체도 외롭고 힘든 시간들인데 체류 자격 비자연장으로 인하여 더욱더 많은 마음에 상처를 받는 한 부모가정 결혼이민자들도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매년 똑같은 체류자격으로 비자연장을 하지만 매년 똑같은 서류를 제출해야만 하는 것 까지도 이해를 하는데 담당 창구직원 이 바뀌게 되면 또 다시 과거사에서부터 현재 일까지 심문 조사 받듯이 실태조사를 거치면서 비자연장 여부가 결정되는 참으로 답답한 출입국민원이 반복되면서 한 부모 가정의 이주여성들의 고통과 아픔이 더해지고 있다.   법무부는 특별한 사안이 없는 이들에게는 비자연장 시 간소화 할 수 있는 제도적 행정지원 장치가 시급하다고 본다. 이로서 법무부 관계자분들은 이와 같은 사례를 종합하여 이주민들의 고충에 대하여 한번쯤 심도 있게 논의해 봤으면 한다.   또 다른 사례로 B국의 D여성은 경북지역 어느 시골마을에 사는 노총각과 혼인을 하고 아들하나를 출산하고 살았으나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까운 이주여성 긴급센터의 도움을 받고 남편의 귀책사유로 이혼을 하고 4살 난 아들을 동반하고 부천지역으로 이사를 하였다.   그러나 이혼한 남편이 아들을 찾아 올까봐 거주지 주소를 비공개 신청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혼 한지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들의 호적을 엄마와 같은 주소지로 옮겨놓지 못하고 이웃지인의 집에 양해를 구하고 그 집에 동거인으로 올려놓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B국의 D여성은 이혼남편의 학대와 폭력으로 대인기피증까지 있어서 초기에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기관에서 상담을 시도하였으나 말문을 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번역사를 통하여 신뢰와 믿음을 심어주고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한 후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고 아울러 친정어머니도 초청하여 외로움을 극복하며 아들과 함께 어느 정도 안정된 정착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아들 하나만 데리고 홀로 가정경제를 꾸려야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아시아마트를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얼마간 여유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아들이 벌써 성장하여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법무부는 친정어머니 초청과 체류를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아 또 다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법무부 출입국관리법 지침에는 이와 같은 경우 친정부모 초청과 체류가 더 이상 안 되는 줄 알고 있지만 B국의 D여성의 경우는 특별한 사유로서 인도주의적 차원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결혼이주여성으로서 이혼남편의 학대와 폭력으로 대인기피증까지 앓았던 B국의 D여성의 경우 그동안 친정어머니의 도움으로 이제 겨우 정신적,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았는데 또 다시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은 D여성에게 있어서는 삶에 안정과 행복권을 빼앗아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D여성의 친정어머니는 법무부지침과 관계없이 인도주의 차원에서 체류자격을 부여해 주는 것이 마당하다고 생각하여 법무부에 체류자격 연장신청을 특별히 상신하여 최근에는 다문화 가정 자녀가 만 7세가 될 때까지와 한 부모가정이나 자녀가 장애 아동일 경우는 친정부모 초청과 체류기간을 예외로 하는 지침과 시행령(2018. 4. 2.)이 이루어졌다.   이에 D여성은 크게 한숨 돌리며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열심히 아시아마트를 운영하면서 아들을 잘 키우겠다고 하면서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이와 같이 이민자들의 이혼 및 사별로 인하여 한 부모가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경제적 정신적 고통에 플러스 로 체류자격과 친정부모초청까지 어려움을 안고 있는 이들에게 좀 더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요구되고 있다. (7)귀화자 및 영주권자 이혼 및 사별 후 재혼가정(F-6-1) 귀화신청 자격에 있어서 결혼이민자는 2년 이상 기타 일반귀화자는 5년 이상 거주기간이 경과된 자로서 결혼이민자는 3천만원 이상 일반귀화자는 6천만원 이상의 재산과 관련 소득증빙과 한국어 언어능력을 갖춘 후 귀화신청을 하여 귀화허가를 받고 대한민국 국민이 된 사람을 귀화자라고 한다.   영주권자 역시 귀화자와 같은 자격을 갖추고 영주권신청을 하여 영주자격을 부여받은 사람을 영주권자(F-5)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에 안정된 체류와 거주권을 가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귀화자는 과거 자국민이나 제3국의 배우자를 만나 재혼을 함으로서 귀화자의 배우자는 국민의 배우자 자격으로 F-6 비자를 취득하게 되고 영주권자의 배우자는 F-2 비자를 취득하게 되어 모두 다 안정된 체류자격을 갖게 된다.   이로 인하여 국내에 불안전한 체류자격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들 중 특히 미등록자 외국인들은 귀화자 이혼녀나 이혼남을 만나는 것은 안전한 체류자격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황금 열쇠를 만나듯이 인기 있는 결혼 상대자이다.   영주권자 역시 귀화자와 마찬가지로 체류자격이 불안전한 외국인들은 영주권자와 혼인함으로서 안정된 비자를 받기 때문에 이들과의 혼인을 매우 선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호에 계속, ‘한국의 이주민 사회’ 서점 판매 중>   야스미디어
    • 외국인주민
    • 비자 Visa
    2019-12-03
  • 韓国の外国人、多文化政策
       韓国は1980年代まではドイツへの看護婦(当時)、鉱山労働者、中東諸国への労働者派遣など、国内労働者の「送り出し国」でした。1990年代に入り、急速な経済成長、民主化、日本と同じような少子高齢化(韓国では低出産高齢化と言います)が進み、今度は外国人の受け入れ国へと変化していきます。労働力の不足を補う外国人労働者の存在が不可欠になってきたのです。そこで日本の研修技能実習制度に類似する外国人産業研究・研修就業制度を制定、積極的に外国人の受け入れに乗り出します。また2004年からは雇用許可制をスタートさせます。  このような動きに伴い、2000年代に入ると韓国人と外国出身者との国際結婚、とりわけ地方の農林水産業男性と、東南アジアなどのいわゆる発展途上国からの女性との結婚が急増します。2009年の韓国国内婚姻件数の内、10%を外国人との結婚が占めたほどです。これは女性の社会進出が進み、都市へ働きに出た結果、農山漁村地域の男性の結婚難が深刻化するなかで、東南アジアなどの女性が韓国人との結婚を通じて社会的上昇を望んだ(いわゆる「コリアンドリーム」)ことによってもららされたものが多いと考えられます。以後緩やかにその数は減りつつありますが、依然として国内婚姻数に占める割合は一定程度存在し、現在では国際結婚で生まれた子どもの数も増加しています。  社会の急激な変化を受け、韓国では増える外国人の人権問題、社会的処遇を考慮し、2007年には在韓外国人処遇基本法を、2008年には多文化家族支援法を制定しました。そして全国自治体ごとに多文化家族支援センターを設置しています。問題に直面すると、短期で法律をつくり予算を確保するという韓国のスタイルはたいへんダイナミックです。  法制度が確立し、支援センターがあるということは、私たち外国人にとってたいへん心強いものです。まず入国初期には韓国語講座、各種韓国文化講座を無料で受講することができます。また近年では外国人を韓国社会へ同化させるのではなく、外国人の母語、文化などを尊重し、多文化家庭の子どもたちへの教育を支援したり、外国人を講師として迎え多文化理解教育を行うなど、社会統合としての多文化教育を進めています。  しかしながら韓国の多文化家族支援政策は基本的に国際結婚家庭、つまり韓国人の家族であること、将来韓国籍を取得して韓国人となる、また韓国国民である子どもを育てる家庭を対象としていることからたいへん限定的だと言えます。つまり外国人労働者などの外国人家庭、韓国国籍をもつ在日朝鮮人と韓国人の結婚などはその範疇にはいりません。したがってセンターへの登録も制限されています。現場の裁量で運営されているところもありますが、"多文化"と銘打つ割には外国人労働者に対しての支援には限界があるようです。  このように限定的ではあり、中身はまだ不十分とはいえ、日本と比べてみると大変進んでいると思えます。特に中途入国学齢期の子どものための公立委託学校(寄宿舎完備)の存在は日本からもたいへん注目されています。また一定の居住要件を満たした外国籍者に地方参政権を認めている点は、植民地支配の歴史によって生み出された在日朝鮮人の市民権を、いまだに制限している日本が見習わ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だと思います。外国人労働者に対する様々な人権侵害や、多文化家庭に内在する問題など、韓国社会の課題はまだまだたくさんありますが、しっかりとした法体系の下、地方自治体や様々な機関、そして外国人当事者たちの活動により、韓国は確実に多文化共生社会へと変化し続けています。  
    • Multi-Lang
    • 日本語
    2019-11-08
  • 한국의 이주민 사회 ‘한국에 있는 다양한 외국인주민들’
    1. 결혼이민자(5)외국인이 한국인과 재재혼한 결혼이민자F-6-1   첫 재판은 돈을 떠나 실제로 너무나 억울한 고발이었고 판결이었다. 사연인즉 K결혼이주여성의 재재혼 남편이 이주여성의 딸 성추행 사건으로 경찰서에 고발되어 조사를 받고 실형을 선고 받은 것에 앙심을 품은 고발이었다. 이는 K결혼이주여성은 딸이 성추행을 당해 황급히 집을 나올 때 빈손으로 나왔다가 며칠 뒤 재재혼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딸과 이주여성이 평소 사용하던 의류나 기타 소지품을 챙겨오고 싶다고 이혼재판 중에 남편에게 전화로 통보하고 허락을 받은 후 전에 살던 집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택시를 타고 살던 집에 도착하여 평소 사용하던 물건 일부를 챙겨 나오면서 평소에 이주여성과 딸이 열심히 모아 두었던 돼지저금통을 들고 나왔는데 재재혼 남편은 그 저금통에 많은 돈이 들어있었다며 그 돈은 재재혼 남편의 돈이라면서 이주여성을 주거침입 절도죄로 경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되었다. 한편 고발한 이혼남편은 이주여성이 집안에서 물품을 이것저것 챙기고 있는 모습을 미리 녹화된 CCTV영상자료를 증거물로 법원에 제출하였기에 이주여성은 1심에서 벌금 70만원을 선고 받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법률구조공단을 통하여 무료변호사를 재선임하고 무죄를 증명할 수 있는 각종 관련 자료를 수소문하며 차분히 증거물을 수집하여 항소한 결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후 재 재혼남편이 선임한 상대 변호사가 다시 항소를 하였으나 역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담당 검사가 항소를 하여 또 다시 3심 재판을 기다렸으나 마지막 항소 역시 기각되고 무죄확정 판결을 받는데 무려 11개월이란 세월이 지나면서 K결혼이주여성의 억울한 절도사건은 무죄로 마무리되었으나 몸과 마음이 망신창이가 되어 버렸다.그러나 11개월 동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시달린 후유증으로 인하여 일자리도 찾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아도 일도 할 수 없는 정신적인 상태였으나 이를 보상받을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과 재 재혼하고 이혼한 결혼이민자 외국인의 한계이다. 이들 가족 역시 귀화전이라 외국인 가정으로 분류되어 이주민 사회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편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장하는 아동청소년들은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청소년기를 맞이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누가 어떻게 치유하며 보듬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그리하여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경기글로벌센터에서는 7년 전부터 이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방과 후 학습멘토링을 하면서 이들의 심리상태와 마음의 상처를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으면서 이들의 심리정서지원과 정착 학습지도를 하고 있다. 이에 이들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며 보살피기 위해서는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전달체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조심스럽게 청원해 본다면 어찌됐건 부모들의 재혼과 재 재혼문제로 인하여 생겨난 중도입국아동청소년문제를 원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국 시구군에 글로벌청소년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여 이들이 언제 어느 때이든지 자유롭게 이용하며 한국어와 학교 수업을 별도로 지도받는 것은 물론 심리정서지원과 진로상담까지 병행해 주는 것이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6)이혼 및 사별로 미성년자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결혼이민자(F-6-2) 결혼이민자가정 중 자녀가 있는 가운데 이혼이나 사별로 인하여 자녀의 친권과 양육권을 가지고 자녀를 동반하고 혼자 생활하고 있는 한 부모가정을 말한다. 타국에서 다양한 사연으로 배우자 없이 자녀들만 동반하며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지만 외국인이 자녀를 혼자 양육하면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살아야 하는 것이 한국의 결혼이민자 한부모가정의 현실이다. 대개 어린 자녀들을 동반하고 혼자 살기에 직장을 찾아 취업을 하기도 어렵고 하다 보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많으며 아울러 자녀를 어린이집이라도 보내게 되면 그에 대한 비용과 시간 맞추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들은 첫째 1~2년에 한 번씩 합법적 체류를 위해 비자연장을 할 때마다 이혼이나 사별에 관한 관련 서류를 준비해야하는 것은 물론 자녀양육과 관련한 증거와 소득을 소명해야만 비자연장이 가능하다. M국의 A여성은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행복한 다문화가정을 꾸렸으나 어느 날 갑자기 첫째 딸의 첫돌을 며칠 앞둔 시점에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으로 기막힌 사건을 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집식구들은 모두 남편의 사망이 마치 A여성의 잘못으로 인하여 사망한 것처럼 치부하면서 살던 월세 보증금까지 시집 식구들이 빼어가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는 가운데 하루 아침에 남편도 잃고 집도 잃고 길거리로 쫓겨나야만 했던 한부모 가정이 있었다. 한편 지방의 어느 시골마을로 결혼한 B국의 N여성은 여섯 살 난 아들의 양육권과 친권을 가지고 법정이혼을 하였지만 연로하신 시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내 손자를 절대 보내줄 수 없다며 완강히 거부하여 아들을 데리고 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식을 데리고 오기 위하여 또 다시 법정투쟁을 벌여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그 보다는 할머니와 손자와의 관계 즉, 인륜과 천륜은 저버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어 당분간은 아들이 할머니와 함께 살 수 있도록 배려해 드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N여성은 매년 비자연장을 할 때마다 아들을 양육하고 있지 않는다는 사유로 비자연장을 거부당하였다. 그때마다 출입국 담당창구 직원에게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고 심지어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본 기관에서 시어머니 되신 분과 전화통화한 음성녹음까지 들려주고서야 비자연장을 받는 수난을 매년 겪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그 다음해부터는 수시로 시어머니 집을 찾아 아들을 만나고 있다는 증거로 시외버스표를 증거물로 모으라고 하였으며 아울러 방문할 때마다 아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보관한 후 아들 명의로 매월 30만원씩의 적금 통장을 만들어 향후 양육비 저축 근거를 바탕으로 비자연장 할 때마다 이 모두를 증거물로 제시하여 비자를 연장 받은 바 있다.<다음호에 계속, ‘한국의 이주민 사회’ 서점 판매 중>야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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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2019-11-08
  • 한국인과 결혼한 결혼이주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어려움, F-6-1비자에 대해(6)
    1. 결혼이민자(4)외국인이 한국인과 재혼한 결혼이민자F-6-1V국의 Y씨가 재혼남편의 협의이혼에 동의하지 않자 재혼 남편이 수시로 폭행을 행사하고 심지어 목욕탕에서 Y씨의 목을 조르고 샤워기로 머리를 내려치기도 했는데 그나마 피하여 큰 화를 모면 할 수 있었지만 그에 대한 증거물이 없어 긴 한숨만 내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V국의 재혼결혼이주여성 Y씨는 협의이혼을 당하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없음으로 말미암아 출국 대상이다.   재혼 결혼이주여성 Y씨는 만약에 또 이혼을 하고 자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V국에 사회적 정서나 집안문화로 볼 때 이혼을 두 번씩이나 한 여성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창피해서 고향으로 도저히 돌아갈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재혼남편은 이미 이혼을 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고 아울러 친정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주여성 Y씨는 변호사를 찾아 상담을 하였으나 몇 백만원에 달하는 변호사비와 변호사의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모호한 재판 예상결과에 대하여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우리 속담에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으면 처음부터 다시 꿰어야 하듯이 국제결혼에 있어서 재혼가정이나 재재혼가정은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여 진정한 부부사랑으로 결혼이민자 배우자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준비되어 있을 때 그때서야 국제결혼을 하길 바란다고 권면하고 싶다.   한 사람의 무책임한 국제결혼으로 인한 그 피해는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통하여 사회적 비용으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국제결혼을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5)외국인이 한국인과 재재혼한 결혼이민자F-6-1외국인이 자국에서 초혼과 재혼에서 각각 자녀를 출산한 후 이혼이나 사별로 자녀들을 동반하고 살다가 뒤늦게 한국인 남성을 만나 재재혼으로 만나 이루어진 가정이다.   일부 외국인 배우자는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출산한 자녀들을 직접 양육하기보다는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에게 위탁, 양육하다가 한국인과 재재혼한 가정으로 입양을 시키거나 아니면 부모초청으로 함께 가족구성을 이루다가 또 다시 이혼이나 사별을 하고 완전한 외국인가정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이복오누이 관계에 있는 자녀들을 동반하고 재재혼한 결혼이주여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한국인 남성의 100% 귀책사유로 이혼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체류자격만 부여될 뿐 완전한 외국인가정으로 분류되어 이주민 사회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또 다른 외국인 다문화가정이다.   이에 고충상담 사례를 살펴보면 J국의 K결혼이주여성은 자국에서 자국민과의 초혼에서 아들을 낳고 이혼하고 역시 자국에서 자국민과 재혼하고 딸을 낳은 후 이혼을 하였다.   이후 몇 년이 지난 후 한국인과 재 재혼한 후 뒤늦게 둘째딸을 중도입국시켜 함께 6년 정도 살고 있는 동안 재재혼 남편은 경제적인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신용불량자에 음주 및 언어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하였다.   더욱 황당한 사건은 재재혼남편은 K결혼이주여성이 데리고 온 딸을 성추행하는 파렴치한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결국 법정 이혼소송을 하고 말았다.   K결혼이주여성은 법정 이혼소송을 하는 과정에서 재재혼남편은 이혼불가를 외치며 가스통까지 들고 이주여성이 임시로 머무르고 있는 집으로 찾아와 공갈협박과 폭언을 일삼았다.   이 과정에서 이주여성은 감당치 못할 스트레스로 인하여 순간 치매 증상까지 나타나 정신과 치료와 심리상담치료까지 받으며 이혼 재판에 응하여 어렵게 이혼판결문을 받았지만 남는 것은 딸과 함께 마음에 상처투성이 뿐이었다.   이혼소송 시작할 때부터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딸만 데리고 집을 나온 이주여성은 심한 우울증과 함께 건강이 더욱 나빠지면서 직장도 다닐 수도 없게 되었다.   이주여성은 신경정신과를 다니면서 정신적인 치료를 받는 가운데 순간 치매증상이 더욱 악화되어 집을 나왔다가 본인의 집을 찾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이에 당장 급하게 얻은 집 월세를 내는 것도, 각종 공과금을 내는 것도, 최저 생계비조차 한 푼 지원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지만 이들 가정을 지원하고 도움을 줄 공식적인 공공기관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역시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K결혼이주여성은 재재혼이었지만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가운데 법정이혼으로 하여금 혼인단절이 되어 순수 외국인가정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본 기관에서 긴급생계비 모금을 하고 민간단체 이곳저곳을 연결시켜 겨우 숨통을 틀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이혼한 남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K결혼이주여성을 절도죄로 뒤늦게 경찰서에 고발하여 이주여성은 하루아침에 절도 피의자 신분으로 몰려 법원재판을 받기 위하여 법정을 들락거려야만 했다.   이에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본 기관에서는 또 다시 법률지원을 안내하면서 지루한 법정다툼으로 재판에 대응하였으나 첫 재판에서 벌금 70만원을 선고받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K결혼이주여성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바닥에서 헤매고 있는데 절도피의자 신분으로 소송을 당해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납득을 할 수 없어 건강은 더욱더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첫 재판은 돈을 떠나 실제로 너무나 억울한 고발이었고 판결이었다. 사연인즉 K결혼이주여성의 재재혼 남편이 이주여성의 딸 성추행 사건으로 경찰서에 고발되어 조사를 받고 실형을 선고 받은 것에 앙심을 품은 고발이었다.   이는 K결혼이주여성은 딸이 성추행을 당하고 황급히 집을 나올 때 빈손으로 나왔다가 며칠 뒤 재재혼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딸과 이주여성이 평소 사용하던 의류나 기타 소지품을 챙겨오고 싶다고 이혼재판 중에 남편에게 전화로 통보하고 허락을 받은 후 전에 살던 집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택시를 타고 살던 집에 도착하여 평소 사용하던 물건 일부를 챙겨 나오면서 평소에 이주여성과 딸이 열심히 모아 두었던 돼지저금통을 들고 나왔는데 재재혼 남편은 그 저금통에 많은 돈이 들어있었다며 그 돈은 재재혼 남편의 돈이라면서 이주여성을 주거침입 절도죄로 경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되었다.<다음호에 계속, ‘한국의 이주민 사회’ 서점 판매 중>야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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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30
  • 한국의 이주민 사회 ‘한국에 있는 다양한 외국인주민들’
    1. 결혼이민자(3)한국인이 외국인과 재 재혼한 결혼이민자F-6-1그렇다면 여성가족부는 전국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실제 이용하는 약 5만여명의 결혼이주여성을 위해 건강진흥원과 전국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적절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부모들의 재혼과 재 재혼으로 인한 그 피해 당사자는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들이기 때문에 정부는 여성가족부 아래 지방자치단체를 통하여 결혼이주여성들만을 위한 각종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은 잘하고 있는 정책인가 점검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비슷한 연령대로 연애기간을 거쳐 국제 결혼을 한 커플들은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아 도움을 받을 것이 거의 없다.   문제는 일부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하여 소위 묻지마 초혼이나 재혼으로 이루어진 일부 다문화가정이 문제이며 그들 가정들은 초기에 많은 문제점을 이미 가지고 혼인을 하였기에 한국어교육과 정착지원 상담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 가정은 행복한 가정을 세워나가기 보다는 중간에 대부분 갈라서게 되는 경향이 많다. 이주여성 긴급센터를 통하여 이혼을 하게 된 다문화가정이 얼마나 되는지 여성가족부가 파악을 해야 하며 그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수립해야 할 것이다.   결혼이란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물론 인권문제가 결부되기에 함부로 규제할 수도 없는 것은 인정하지만 국민 스스로 최소한의 인간적인 양심을 가지고 국제결혼을 선택해야 하며 아울러 주변인들의 많은 지지와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이들 재재혼가정은 한번 실패 했는데 두 번 세 번은 못하겠느냐 하는 식으로 국제결혼을 밥 먹듯 하고 밥 먹듯 이혼하는 이들로 인하여 국제결혼에 대하여 불신의 벽만 더 높아만 가고 있다.   이렇게 복잡 다양한 과정 속에서 재혼이든 재재혼이든 두 사람 사이에서 원치 않는 자녀라도 출생되게 되면 사회적으로 더 큰 숙제거리와 사회적 비용을 남겨주는 꼴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지혜와 당사자들의 인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4)외국인이 한국인과 재혼한 결혼이민자F-6-1외국인이 자국에서 혼인을 한 후 자녀를 두고 이혼이나 사별을 한 후 국제결혼으로 한국인 남성을 만나 재혼한 가정이다.   따라서 한국인과 혼인 후 2~3년이 경과 된 후 어느 정도 안정된 결혼생활이 정착되었다고 인식이 되면 그 동안 친정엄마에게 맡겨 양육하던지 아니면 그 누군가에 의하여 양육하던 아들이나 딸을 뒤늦게 중도입국 시켜 재혼남 가정으로 입양절차를 밟고 계부와 함께 살게 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의 문제점은 중도입국한 아동청소년들이 계부와 함께 살면서 계부와의 관계형성이 잘 안되어 상호 불편한 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으며 아울러 외국인 배우자가 중도입국시킨 자녀가운데 딸인 경우는 딸이 성장하면서 계부와의 관계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역시 재혼한 부부 사이에서 자녀가 출생되거나 하면 이복 오누이 관계가 형성되어 새로운 가족관계구성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재혼다문화가정이다.   그러나 재혼가정 부부사이에서는 자녀가 있거나 없는 경우가 거의 반반인 것 같다.   결혼이주여성가운데 중도입국 자녀가 초중고대학생 나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동청소년들을 중도 입국시켜 안정된 생활과 적응을 원하고 있으나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새로운 언어와 문화충격으로 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V국의 결혼이주여성은 본인도 재혼이며 한국인 남편도 재혼이었다.   한국인 남편의 자녀들은 모두 대학생들이 다 되었다. 하지만 이주여성의 자녀는 중학교 3학년 나이였으며 V국에 가족친인척이 없어서 그 누구도 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학생이었다.   그리하여 V국의 결혼이주여성은 남편의 도움을 받아 중학교 3학년짜리 자녀를 입양초청하려고 하였으나 V국은 아동해외 입양불허와 함께 V국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결혼이주여성의 중도입국자녀에 대하여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입국 비자발급이 가능하다고 하여 3~4년 동안 마음고생을 한 가정도 있었다.   물론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본 기관의 도움으로 뒤늦게 초청이 되어 왔으나 V국에서 이미 엄마 곁으로 온다는 들뜬 마음과 함께 따뜻한 사랑으로 돌봄을 받지 못했던 중학교 3학년 학생은 초청 기간이 늦어지면서 대학생 나이가 되어서야 초청비자가 나왔다.   그렇다보니 V국에서부터 공부는 뒷전이었고 밥만 먹고 게임에만 푸욱 빠져 살던 중도입국 청년은 한국어 배우기도 게을리 하는 것은 물론 집안에서는 엄마와 자국어로 대화를 함으로 말미암아 세상과 점점 담을 쌓고 사는 격이 되고 있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한국인 계부는 덩치 큰 양아들의 행동에 나날이 걱정만 쌓여가고 아울러 배우자와도 이로 인하여 가끔 말다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호소하였다.   이와 같이 부모 어른들의 재혼으로 하여금 중간에서 가장 많은 고통과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있는 이들은 바로 그들의 자녀들이며 아울러 이주배경을 가진 중도입국 아동청소년들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또 결혼이민자 재혼가정 중 V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Y씨(여 43세)는 V국에 24세 딸과 21세 아들을 두고 이혼하고 한국으로 재혼하여 왔다.   재혼한 가정에는 재혼 남편(남 56세)의 자녀 아들 21세, 딸 19세가 있는데 아들은 같이 살고 딸은 재혼남의 전처와 같이 살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4~5년을 살다보니 V국의 이주여성 Y씨는 점점 찬밥 신세가 되어가면서 1년에 한 번씩 비자연장을 할 때마다 남편의 비협조로 위장결혼이라는 의심을 받아가며 6개월, 3개월짜리 비자연장을 받으며 힘겹게 살고 있다.   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재혼남편은 이혼한 전처를 수시로 만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예 다시 합치기로 하였다면서 V국의 재혼 결혼이주여성 Y씨에게 협의이혼을 요구하고 있다.<다음호에 계속, ‘한국의 이주민 사회’ 서점 판매 중>야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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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2019-10-28
  • 아키오의 한일역사 이야기 - 나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작년 겨울부터 이어지는 ‘한일관계 악화’. 한국에 산 지 22년째가 되는데, 어느 때보다 가장 ‘악화’됐음을 느낍니다. 이런 사태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한일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과 함께 성명문을 만들어 확산시키는 일을 생각해 냈습니다. 내용은 한일 양 정부, 지자체, 시민사회를 향해 우선 한국에 사는 우리 일본인, 특히 아이들에 대하여 국가 간 관계를 떠나 위협이 가해지는 일이 없도록 지켜주었으면 한다는 호소입니다. 물론 우리뿐만 아니라, 조선학교 교육 무상화 제외나 헤이트 스피치 등 일본 사회가 아직도 차별하는 한반도에 민족적 뿌리를 가지는 재일조선인의 안전을 요구하는 메시지도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의 배경인, 일본이 과거에 잘못한 길을 걸었는데도 불구하고, 현 일본 정권이 이에 대하여 진지하게 마주 대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 왜곡을 반복하는 것에 대한 반대의 의사를 밝혔으며, 일본 정부에 이웃 나라와 우호 관계를 쌓아갈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성명문을 작성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수단이 없으므로 각자가 개인적으로 SNS 등을 통해서 확산시켰습니다. 그 결과 한 달도 안돼 일본과 한국 등에서 약 250명, 5단체로부터 동참을 받았습니다. 몇몇 한국 미디어는 보도해주어서, 목소리를 낸 보람을 느꼈습니다. 더욱 큰 효력을 기대해, 일본대사관 등 공적 기관으로 보내는 것도 고려하였지만, 개인을 특정해서 가족에까지 공격을 가하는 일본의 상황이 두려워 그만두었습니다. 성명을 확산하는 과정에서 많은 동참, 같은 마음으로 싸우겠다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동참은 하되 정권을 비판하는 일, 역사문제를 언급하는 일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의견, 또한 정권을 비판하거나 역사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문화나 보다 즐거운 일로 한일 간이 가까워지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이 사회적인 존재인 한, 정치나 역사와 관계없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를 만들어 보다 좋은 사회를 지향하면 정치적인 의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갑자기 세상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와서 미래로 이어지는 역사적인 존재이며, 역사의 흐름을 의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문화교류, 청소년교류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일 시민들이 꾸준히 진행해 온 ‘문화교류’조차 정권에 의해 쉽게 무너진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문화교류’를 진행하면서, 정당하지 못한 거대한 힘에 대항하며 비판의 의사를 보이며 보다 성숙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문화교류’도 못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는 평상시에 역사나 정치에 흥미, 관심이 없는 이에게도 성명문이 전해지며, 연대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해서, 한 단어 한 단어에 신경을 쓰며 성명문을 작성했습니다. 그 결과, 수는 적지만, 정권에 대한 비판이 매우 약하다는, 재일조선인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일본 사회에 사는(살았던) 재일조선인에 있어서는 매우 기댈 수 없는 어딘가 부족한 문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 그 자체가 일본 사회가 그들에게 가하는 차별의 심각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여러 반응이 있었는데, 한편으로 주한 일본인 커뮤니티 대부분한테는 아무 의견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찬성인지, 반대인지, 어디가 안 좋은지 전혀 모르면 대화를 나눌 수 없으며, 무시 배제된 느낌만 남았습니다. 제 경험으로 봐도 일본 학교 교육에서는 정치적인 것에 관여하는 일, 역사 특히 부(負)의 역사-가해의 역사와 마주 보는 것을 그다지 권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결과 이렇게 되었다면, 성숙한 세계 시민이 만들어가는 앞으로의 세계에 있어서 해외 거주 일본인의 역할은 한정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정치적인 것, 역사적인 것은 지금을 사는 나의 문제라 생각하며, 발신하는 것으로부터 무엇인가가 시작될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 Local-East
    • 구리
    2019-09-10
  • 한국의 이주민 사회 ‘한국에 있는 다양한 외국인주민들’
        1. 결혼이민자(2) 한국인이 외국인과 재혼한 결혼이민자 F-6-1자녀가 사망하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 이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본 기관에서 가족항공권을 지원하여 공황상태에 있는 이주여성을 친정집으로 잠시 보내어 심신을 달래보기로 하였으나 친정에 가서 오래있지 못하고 곧바로 되돌아오고 말았다.그렇게 어린 아들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부모들은 뼈를 깎는 아픔을 안고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고 첫째와 너무나 꼭 닮은 아들을 출산하면서 새로운 희망의 등불이 되었다. 그 이후 B씨는 K국의 장모님을 초청하여 아이양육과 함께 아내의 심리정서지원을 도우려고 하였으나 반대로 장모님으로 인해 이 가정에 새로운 고민과 가족갈등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이유는 초청받아 입국한 장모님은 불법취업을 해서라도 돈벌이에 나서기를 희망하고 나아가 돈을 벌면 전액 고향으로 송금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그러나 B씨는 전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장성한 두 아들과 현재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어린 아들과 장모님 그리고 배우자와 연로하신 홀어머니와 함께 작은 빌라에 일곱 식구가 살기에는 너무나 비좁은 공간이었다. B씨의 한 달 월급이 180여 만원에 불과한데 장모는 눈치 없이 연일 고기반찬만 요구하고 홀어머니와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청소와 정리는 전혀 할 줄 모르고 지내다보니 사돈지간에도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고 하소연 하였다.그래서 B씨는 장모님이 고향으로 출국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지만 아내와 장모는 이를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고 불법취업을 통하여 돈벌이에만 급급하다보니 재혼 다문화가정의 또 다른 문제이다.이 밖에 특이한 사례로 한국의 중년 여성들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등 여러 국가에서 온 연하의 남성들과 재혼하여 살고 있는 다문화가정도 상당히 많다. 이들의 만남은 대개 직장에서 일하는 가운데 외국인 남성들의 체류자격 변경으로 만난 커플이 많으며 아울러 한국인 여성을 외국인 남성들의 경제력에 의지하여 생활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특히 결혼이민자들 중 외국인 남성 배우자의 경우 이민다문화 가족정책에서 완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는 여성가족부가 결혼이주여성 다문화가족 중심으로만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와 같이 다양한 다문화가족 구성원이 이루지면서 정부의 이민정책과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적인 지원서비스 전달체계도 많은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본다.한편 재혼으로 이루어지는 국제결혼가정의 부부연령차이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도 많지만 이를 법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3)한국인이 외국인과 재 재혼한 결혼이민자F-6-1한국인 남성이 초혼에 실패하고 외국인여성을 재혼으로 만나 혼인을 하였으나 역시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하여 이혼을 하고 다시 외국인과 재 재혼한 가정으로 이루어진 가정이다.재 재혼한 가정으로는 한국인이 한국인과의 초혼에서 사별이나 이혼한 후 재혼으로 국제결혼을 한 후 다시 이혼하고 재 재혼으로 또 다시 국제결혼을 한 재 재혼가정들이다.하지만 초혼이나 재혼 및 재 재혼관계에서 자녀들이 각각 출생하였다면 참으로 복잡한 가족구성원이 되고 만다. 여기서 재혼을 하던 재 재혼을 하던 사람 사는 세상에 다양한 가족구성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심적 고통과 성장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받게되는 수많은 마음에 상처들을 어떻게 싸매고 치유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심각하다.국내외 청소년문제는 대부분 부모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생겨난 일이라고 청소년상담전문가들이 말한다. 복잡한 가족구성원 속에서 태어난 아동청소년들은 그야말로 특별한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진다. 결혼이주여성과 고충상담을 하다가 우연히 혼인관계증명서를 보게 되었는데 한국인 남성 Y씨는 한국인 여성과 초혼으로 혼인하고 이혼하고 이어서 중국 한족 여성을 만나 재혼을 한 후 이혼하고 또 이어서 베트남 여성을 만나 재 재혼을 하고 살다가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고충상담을 의뢰하면서 이와 같은 재 재혼가정을 발견하게 되었다.여기에서 눈여겨 볼 사안은 초혼에서 출산한 자녀들은 대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정도의 나이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재혼을 하여 자녀를 출산하고 난 뒤 곧이어 이혼하고 곧바로 재 재혼을 통하여 그 사이에 자녀를 또 출산하는 가정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인 남편의 귀책 사유로 인하여 이혼을 하는 사례가 많아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대부분 이혼한 결혼이주여성들이 양육 및 친권을 지정받아 양육보호하게 되면서 한 부모가정이나 새로운 다문화가정 구성원 속으로 다시 흡수되기도 한다.이러한 복잡 다양한 다문화가족 가계도속에서 태어난 아동청소년들을 우리사회는 가장 먼저 보듬고 신경써야할 대상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민정책을 다루는 정부나 다문화가족지원을 전담하고 있는 여성가족부에서는 이들을 언급하거나 자세한 통계자료조차 찾아 볼 수가 없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는 다문화가족지원법에 근거하여 결혼이주여성들 중심으로만 지원하는 예산이 연간 수백억원에 달하고 있는데 일반 국민들이 이를 자세히 알게 되면 역차별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국내에는 결혼이민자가 284,000(외국인정책본부 자료 2018. 9. 30. 기준)여명 정도 되는데 이들 중에 귀화자가 126,000여명 정도이며 남성결혼이민자도 26,000여명이나 된다. 이로서 여성가족부가 다문화가족지원법에 근거하여 전국 시·구·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결혼이주여성을 지원하는 실제적 대상자는 131,000여명에 불과하며 이들 중에 이중, 삼중으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이용하는 중복이용자 포함 결혼이주여성은 약 35~40% 정도에 그치고 있다.그렇다면 여성가족부는 전국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실제 이용하는 약 5만여명의 결혼이주여성을 위해 건강진흥원과 전국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적절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결국 부모들의 재혼과 재 재혼으로 인한 그 피해 당사자는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들이기 때문에 정부는 여성가족부 아래 지방자치단체를 통하여 결혼이주여성들만을 위한 각종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은 잘하고 있는 정책인가 점검해야 한다.<다음호에 계속, ‘한국의 이주민 사회’ 서점 판매 중>야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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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07
  • 멈추지 않는 에너지 ‘네팔 귀환 이주노동자, 시타람’(1)
     ▲‘2018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 자료집 국내 최고의 외국인주민 인권 옹호 기관인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소장 오경석)는 지난해 12월 ‘2018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경기도, 우리에게 맡겨요’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에 가득 차 있는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기 위해 기획됐다. 사회 문화적으로 낯선 이주의 공간에서, 길지 않은 시간에,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외국인주민을 발굴해 소개하는 작업은 우리 곁의 이주민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일곱 명의 이주민들을 따라가 보자.   #프롤로그시타람은 네팔 돌라카 출신의 귀환 이주노동자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2009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2016년 귀환할 때 까지,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그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네팔에서는 도둑질이나 사업을 하기 전에는 획득하기 어려운 1억원이라는 거금을 벌 수 있었다. 한국어 공부에 전념하여 10년 전에 한국어 초짜였던 그는 현재 누구보다도 유능한 한국어 강사이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계속 체류할 수 있는 숙련인력(E-7) 비자 취득에도 성공하였다. 목표지향적이되 친화적이며, 순응적이되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그였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누구보다 열렬한 친한주의자이며, 한국에 계속 체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을 선택, 현재 네팔에 설립된 ‘NEKO HAPPY DREAM’이라는 NGO의 책임자이자 한국어강사로 일하고 있다. NEKO는 NEpal과 Korea의 첫 두 음절을 결합한 사명이다. 네팔로 돌아간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인프라가 전혀 없는 네팔에서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멋진 2층집을 짓는 것이다. #목적을 위한 삶1 : 지금은 놀러갈 시간이 아닌 것 같아요.대부분의 성공한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듯이, 시타람 역시 매우 목적지향적이다. 목적 지향적인 사람의 모든 행동은 그 목표를 구현하는 일에 집중된다. 그들은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시타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시타람이 한국을 택한 이유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한국에 가려면 무엇보다도 한국어 실력이 필요하다. 한국어와 부의 축적, 이 두 가지 목표를 시타람은 이미 이루었다. 한국에서 7년간 일하면서 그는 ‘1억 정도’를 벌 수 있었다. 네팔에서 1억이란 ‘도둑질을 하던지 큰 사업을 해야’만 가능한 큰돈이다. 한국에서 번 돈의 일부를 투자한 네팔 부동산의 가치도 ‘1억 정도’이다. 그 돈을 벌기(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는 7년간 거의 쉬는 날 없이 ‘보통 12시간씩’ 일을 했다. 때로는 ‘아침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일을 한 적도 있었다. “보통은 12시간 일했어요. 언젠가는 한 15시간씩 한 적도 많고. 토요일에도 일하고, 일요일에도 일하고. 겨울에는 밤 12시까지는 기본이고, 한시, 두시, 세시는 가끔씩.”그렇게 어렵게 번 돈을 그는 결코 허투루 쓰지 않았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들을 가르쳤으며, 매제에게는 사업 자금을 지원해주었다. 이제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잘 관리만 하면 되는 상황이 되었다고 자족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지금은 놀러갈 시간이 아닌 것 같아요. 해야 할 일도 많고. 그리고 돈도 많이 벌어야 되고. 60되면 그때 놀러 다녀야 되요.” #목적을 위한 삶2 : 저는 좀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한국에서 가장 기뻤던 일이 ‘한국어 능력 시험 4급 합격’ 했을 때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한국어 사랑은 극진하다. 그는 현재 NEKO의 한국어 교원이기도 하다. 한국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그의 노력 역시 남달랐다. 한국에 입국하기 직전인 2007년 그는 한국어 공부에 입문했다.한국어 학원에서 두어 달 수강한 후 매일 두세시간씩 오로지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혔다. 그리고 함께 공부한 다섯 명의 친구들 가운데 자신만, 네팔 현지에서 치러진 고용허가제 입국을 위한 한국어능력 시험에 합격하였다. 한국에 입국한 후에 그의 한국어 공부는 더욱 본격화되었다. 한국인들과는 무조건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쉬는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한국드라마” 만을 시청했다. 다른 이주노동자들과는 한국어로 채팅을 했다.“한국어공부 열심히 했습니다. 한국생활 하려면 한국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공부를 좀 자랑스럽게, 좀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한국에 입국한 지 3개월 만에 “한국어로 대답까지 할 수 있는 실력”이 될 수 있었다. 그래도 그의 한국어 공부는 중단되지 않았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비자 전환이다.“E-7 비자를 받게 되면 한국에 계속 있을 수 있다고 들어서 열심히 했어요. 한국에 더 있기 위해서. 그 전에도 한국어공부를 했지만, E-7비자를 얻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그렇게 그는 한국어 “초급, 중급” 과정을 차례대로 이수했고, 한국어 능력 시험에 합격했고, 비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비자 전환에 성공한 이후에도 그의 노력은 계속된다. 10여년 전에 한국어에 입문한 그는 이제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이다. 시타람의 목표는 이제 잘 배우는 것에서 잘 가르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을 공부 많이 했어요. 유투브로도 했고, 책들도 많이 보구요. 다른 선생님들 책들도 많이 보고. (그것들을 참고해서) 제일 쉬운 방법으로 저는 제식으로 가르칩니다. 시간 오래 걸려도 알아듣게.” #어려움과 장애물들 : 너무 힘들었어요.시타람은 자신만만하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이룬 사람만이 내보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여유와 자신감으로 충만해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의 여유와 자신감은 ‘노력의 산물’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3번이나 유급을 했을 정도로 공부에는 소질이 없는 아이였다. (한국에 가서 많은 돈을 벌고야 말겠다는) 목표가 그를 바꾸어 놓은 셈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그때는 공부를 못했는데 다음부터는 공부를 잘했습니다.”한국에 입국해서 그가 “너무 힘들었었다.”고 고백하는 어려움의 목록들 역시,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경험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입국 초기 그의 어려움은 한국어, 혹독한 노동 환경과 사업장 차별 그리고 기후, 이렇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사업장에서 그는, 네팔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근력이 필요한 육체노동을 담당해야만 했다. ‘너무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든 일을 했지만, ‘최저 임금 혹은 그 보다 낮은 시급’을 받거나, 아예 ‘돈을 못 받고’ 퇴사를 해야만 했던 적도 있다.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승진에서 배제된 적도 있다. 자신이 기능을 가르쳐준 자신보다 늦게 입사한 후배 한국인 직원이 먼저 승진을 하는 경험은 그에게도 ‘안 좋고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다.“우리 반장님은 사실은 제가 가르친 분이에요. 반장님인데 한국분이잖아요. 나는 외국인인데. 저보다 그 회사에 한 3년 뒤에 오신 분이고, 반장이 되고. 외국인한테는 안 시켜줘요. 그거는 실제로는 조금 기분 나쁘기는 해요.”(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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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07
  • 한국의 이주민 사회 ‘한국에 있는 다양한 외국인주민들’
        1. 결혼이민자   (2) 한국인이 외국인과 재혼한 결혼이민자 F-6-1한국인이 이혼이나 사별을 한 후 자녀를 동반하거나 동반하지 않고 외국인 배우자를 만나 재혼한 가정을 말한다.어린자녀를 동반하고 재혼을 했다면 어린자녀는 외국인 계모나 계부를 만나 성장하게 된다. 어린자녀는 계모나 계부를 친모나 친부로 알고 성장하는 자녀들도 있지만 청소년기나 성년이 되면서 자신의 부모가 계모나 계부라고 스스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외국인 계모가 어린자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간 일을 나간다든지, 아니면 아침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잔업근무를 하면서 돈벌이에만 집중한 나머지 어린자녀를 양육하는 일에는 소홀이 한다든지 하여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나 홀로 먹거나 놀거나 공부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나이에 비하여 성인아이로 성장하면서 또래들에 비하여 자존감이 낮고 산만한 아이로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재혼한 부부 사이에서 자녀가 출생되면 이복형제나 자매가 된다.이런경우 결혼이주여성은 전처의 자녀와 친자의 자녀와의 차별없는 자녀양육은 당연하건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는 것 같았다. 일부 계모들은 전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본국 친정 엄마에게로 보내어 양육하다가 학령기가 다되면 귀국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시키지 않거나 초등학교 입학년도 월 직전에 귀국시켜 언어는 물론 주변 친구들 사귀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재혼가정이 있기도 하다.특히 한국인 남성 중 일부는 초혼에서 결혼하여 출생된 자녀들을 결혼까지 시켜 손자 손녀들을 두고 있는 가운데 중년이 되어 재혼한 남성도 있었다. 이들 중년남성 재혼가정 중 부부 연령 차이가 최고 43년이나 되는 재혼 다문화가정도 있었다. K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은 26세인데 한국인 남편은 69세였다.K국의 결혼이주여성이 결혼 6개월이 지나면서 고충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하루 속히 남편의 곁을 벗어나고 싶다고 하면서 빨리 이혼하고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하였다. 이유는 놀랍게도 남편의 성욕 때문이라고 하였다. 남편은 거의 매일 밤은 기본이고 대낮에도 수시로 변태적 성행위를 요구함으로 말미암아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도저히 살 수가 없다고 고통을 털어놓았다. 이 K국의 이주여성은 남편이 성관계에 제대로 응하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하면서까지 억지로 시도하기에 더 이상은 고통스러워 살 수 없다고 판단하고 가출하여 본 기관에 도움을 요청해왔다. 본 기관에서는 남편을 만나 이와 관련하여 상담을 진행하였으나 남편은 여성으로서 오히려 더 좋은 것이 아니냐는 식이었다. 이들 부부는 수차례에 걸쳐 가출과 상담을 반복하는 가운데 K국 이주여성이 급기야 가출, 잠적하면서 결국 갈라서게 되었다.그 이후 K국 이주여성의 남편(69세)은 아내의 가출로 인하여 혼자 살게 되자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본 기관에 찾아와 중국조선족이나 기타 국가의 여성들 중에 결혼에 실패한 여성들 있으면 소개 좀 시켜달라고 부탁하며 혼자서는 도저히 못살겠다고 추한 욕망을 드러내기도 하였다.결혼이주여성들 중에는 부부연령차이가 평균 10~20년 차이가 나는 케이스가 있는 반면 비슷한 연령대 부부도 있으나 문제는 결혼초기에 언어와 문화적 소통의 문제로 혼자 집안에서만 있어야 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많아 가족들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다.결혼이주여성은 머나먼 타국으로 시집와서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새로운 문화와 언어로 생활환경에 적응하기까지 뼈를 깎는 고통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결혼이주여성은 입국초기 몇 개월 동안 시간을 혼자서 하루 종일 보내다보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이유없이 화를 낸다거나 분노조절을 못하여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초기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하지만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본 기관에서 상담을 통해 만난 한국인 남편은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응대하고 있는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다. 결혼이주여성이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생활에 적응을 하려고 고된 과정을 보내는 것은 까맣게 잊고 집안청소를 잘 안한다거나 밤에 성관계를 잘 응해주지 않는다거나 시도 때도 없이 낮잠만 잔다든가 하는 문제로 불만만 토로하고 있는 남성들이 대부분이었다.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본 기관의 상담과정에서 한국인 남편에게 아내의 현재 상태를 말해주면서 조금의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을 해보았지만 결혼이주여성의 성관계 불응에는 이해고 뭐고 용납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는 이들이 많았다. 재혼한 가정 중에 B씨는 사십대 초반에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둘과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K국의 여성과 재혼하여 아들을 하나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갔다.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예쁘고 귀여운 아들이 4살 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유는 할머니가 빌라 옥상에 잠시 올라가서 일을 하고 있는 사이 손자 녀석이 할머니 몰래 옥상에 올라와 놀게 되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손자가 노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평소와 같이 옥상 출입문을 잠그고 내려가고 말았다.이에 어린 손자는 뒤늦게 옥상출입문을 열려고 했지만 이미 굳게 잠겨버린 문을 열수 없게 되자 혼자서 옥상에서 내려오기 위하여 울며 온갖 발버둥을 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가족들은 이런 사실은 전혀 모르고 해가 저물어 어둠이 짙어가는데에도 아이가 보이질 않자 그때서야 온 식구들이 나서서 아이를 찾아 동네어귀를 돌아다녔지만 아이는 끝내 보이질 않았다.밤은 점점 더 깊어가고 온 식구가 몇 시간 동안 온 동네를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걱정하며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빌라 앞에 동네주민들이 모여서 웅성웅성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슨 일인가 하며 달려가 보니 그렇게 애타게 찾던 바로 그 아들이었다. 그 아이는 혼자서 옥상에서 몇 시간을 울며 옥상 탈출을 시도하다가 결국 4층 빌라 아래로 추락하여 참혹하게 즉사하고 말았다.가족모두가 망연자실하는 것은 물론 결혼이주여성과 재혼남편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 슬픔과 고통은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악몽의 시간으로 이들 가족들을 괴롭히고 있었다.<다음호에 계속, ‘한국의 이주민 사회’ 서점 판매 중>야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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