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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멈추지 않는 에너지 ‘네팔 귀환 이주노동자, 시타람’(1)
     ▲‘2018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 자료집 국내 최고의 외국인주민 인권 옹호 기관인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소장 오경석)는 지난해 12월 ‘2018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경기도, 우리에게 맡겨요’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에 가득 차 있는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기 위해 기획됐다. 사회 문화적으로 낯선 이주의 공간에서, 길지 않은 시간에,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외국인주민을 발굴해 소개하는 작업은 우리 곁의 이주민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일곱 명의 이주민들을 따라가 보자.   #프롤로그시타람은 네팔 돌라카 출신의 귀환 이주노동자이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2009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2016년 귀환할 때 까지,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그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네팔에서는 도둑질이나 사업을 하기 전에는 획득하기 어려운 1억원이라는 거금을 벌 수 있었다. 한국어 공부에 전념하여 10년 전에 한국어 초짜였던 그는 현재 누구보다도 유능한 한국어 강사이다.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계속 체류할 수 있는 숙련인력(E-7) 비자 취득에도 성공하였다. 목표지향적이되 친화적이며, 순응적이되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그였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누구보다 열렬한 친한주의자이며, 한국에 계속 체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을 선택, 현재 네팔에 설립된 ‘NEKO HAPPY DREAM’이라는 NGO의 책임자이자 한국어강사로 일하고 있다. NEKO는 NEpal과 Korea의 첫 두 음절을 결합한 사명이다. 네팔로 돌아간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인프라가 전혀 없는 네팔에서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멋진 2층집을 짓는 것이다. #목적을 위한 삶1 : 지금은 놀러갈 시간이 아닌 것 같아요.대부분의 성공한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듯이, 시타람 역시 매우 목적지향적이다. 목적 지향적인 사람의 모든 행동은 그 목표를 구현하는 일에 집중된다. 그들은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시타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시타람이 한국을 택한 이유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한국에 가려면 무엇보다도 한국어 실력이 필요하다. 한국어와 부의 축적, 이 두 가지 목표를 시타람은 이미 이루었다. 한국에서 7년간 일하면서 그는 ‘1억 정도’를 벌 수 있었다. 네팔에서 1억이란 ‘도둑질을 하던지 큰 사업을 해야’만 가능한 큰돈이다. 한국에서 번 돈의 일부를 투자한 네팔 부동산의 가치도 ‘1억 정도’이다. 그 돈을 벌기(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는 7년간 거의 쉬는 날 없이 ‘보통 12시간씩’ 일을 했다. 때로는 ‘아침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일을 한 적도 있었다. “보통은 12시간 일했어요. 언젠가는 한 15시간씩 한 적도 많고. 토요일에도 일하고, 일요일에도 일하고. 겨울에는 밤 12시까지는 기본이고, 한시, 두시, 세시는 가끔씩.”그렇게 어렵게 번 돈을 그는 결코 허투루 쓰지 않았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들을 가르쳤으며, 매제에게는 사업 자금을 지원해주었다. 이제는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 잘 관리만 하면 되는 상황이 되었다고 자족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지금은 놀러갈 시간이 아닌 것 같아요. 해야 할 일도 많고. 그리고 돈도 많이 벌어야 되고. 60되면 그때 놀러 다녀야 되요.” #목적을 위한 삶2 : 저는 좀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한국에서 가장 기뻤던 일이 ‘한국어 능력 시험 4급 합격’ 했을 때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한국어 사랑은 극진하다. 그는 현재 NEKO의 한국어 교원이기도 하다. 한국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그의 노력 역시 남달랐다. 한국에 입국하기 직전인 2007년 그는 한국어 공부에 입문했다.한국어 학원에서 두어 달 수강한 후 매일 두세시간씩 오로지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혔다. 그리고 함께 공부한 다섯 명의 친구들 가운데 자신만, 네팔 현지에서 치러진 고용허가제 입국을 위한 한국어능력 시험에 합격하였다. 한국에 입국한 후에 그의 한국어 공부는 더욱 본격화되었다. 한국인들과는 무조건 한국어로 대화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쉬는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한국드라마” 만을 시청했다. 다른 이주노동자들과는 한국어로 채팅을 했다.“한국어공부 열심히 했습니다. 한국생활 하려면 한국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원래 공부를 좀 자랑스럽게, 좀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한국에 입국한 지 3개월 만에 “한국어로 대답까지 할 수 있는 실력”이 될 수 있었다. 그래도 그의 한국어 공부는 중단되지 않았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비자 전환이다.“E-7 비자를 받게 되면 한국에 계속 있을 수 있다고 들어서 열심히 했어요. 한국에 더 있기 위해서. 그 전에도 한국어공부를 했지만, E-7비자를 얻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그렇게 그는 한국어 “초급, 중급” 과정을 차례대로 이수했고, 한국어 능력 시험에 합격했고, 비자 전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비자 전환에 성공한 이후에도 그의 노력은 계속된다. 10여년 전에 한국어에 입문한 그는 이제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이다. 시타람의 목표는 이제 잘 배우는 것에서 잘 가르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을 공부 많이 했어요. 유투브로도 했고, 책들도 많이 보구요. 다른 선생님들 책들도 많이 보고. (그것들을 참고해서) 제일 쉬운 방법으로 저는 제식으로 가르칩니다. 시간 오래 걸려도 알아듣게.” #어려움과 장애물들 : 너무 힘들었어요.시타람은 자신만만하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이룬 사람만이 내보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여유와 자신감으로 충만해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의 여유와 자신감은 ‘노력의 산물’이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3번이나 유급을 했을 정도로 공부에는 소질이 없는 아이였다. (한국에 가서 많은 돈을 벌고야 말겠다는) 목표가 그를 바꾸어 놓은 셈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그때는 공부를 못했는데 다음부터는 공부를 잘했습니다.”한국에 입국해서 그가 “너무 힘들었었다.”고 고백하는 어려움의 목록들 역시,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경험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입국 초기 그의 어려움은 한국어, 혹독한 노동 환경과 사업장 차별 그리고 기후, 이렇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사업장에서 그는, 네팔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근력이 필요한 육체노동을 담당해야만 했다. ‘너무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든 일을 했지만, ‘최저 임금 혹은 그 보다 낮은 시급’을 받거나, 아예 ‘돈을 못 받고’ 퇴사를 해야만 했던 적도 있다.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승진에서 배제된 적도 있다. 자신이 기능을 가르쳐준 자신보다 늦게 입사한 후배 한국인 직원이 먼저 승진을 하는 경험은 그에게도 ‘안 좋고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다.“우리 반장님은 사실은 제가 가르친 분이에요. 반장님인데 한국분이잖아요. 나는 외국인인데. 저보다 그 회사에 한 3년 뒤에 오신 분이고, 반장이 되고. 외국인한테는 안 시켜줘요. 그거는 실제로는 조금 기분 나쁘기는 해요.”(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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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07
  • 노동자에서 사업가로, 사회활동가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사하닷’(2)
      국내 최고의 외국인주민 인권 옹호 기관인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소장 오경석)는 지난해 12월 ‘2018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경기도, 우리에게 맡겨요’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에 가득 차 있는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기 위해 기획됐다. 사회 문화적으로 낯선 이주의 공간에서, 길지 않은 시간에,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외국인주민을 발굴해 소개하는 작업은 우리 곁의 이주민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일곱 명의 이주민들을 따라가 보자. 방글라데시와 한국문화는 70% 이상 다르다고 생각해요 : 조심해!“한국 공장에서는 기계를 많이 쓰잖아요. 다치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그냥 만지지 말고 한국 사람들에게 꼭 물어보고, 먼저 설명을 들은 후에 만지라고 말해주곤 해요.” 준법정신 혹은 질서 의식도 한국에 온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익혀야 하는 새로운 규범이다. “한국의 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해줘요. 길거리나 은행 등 어디서나요. 한국 사람들은 잘 지키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안 지키거든요. 운전을 할 때도, 면허를 반드시 먼저 따고, (오토바이의 경우) 헬멧을 꼭 써야 한다는 것도 알려줘요.” 기후와 음식의 차이도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중요한 관문에 해당한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 한국의 겨울은 혹독하기만 하다. 사시사철 따뜻한 나라 방글라데시에서 사람들은 12도 정도만 되어도 “추워서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한국에 와서 첫 겨울은 추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운 건 참을 수 있는데 추운 건 못 참아요. 그래서 동료들에게 한국 겨울은 추우니까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이야기 해줘요.”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한국의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문화 아이템은 ‘종교와 음식(술)’이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에게 종교는 삶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다. 그들은 형식적이건 실질적이건 모두 종교인으로 태어나고 종교인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100퍼센트’종교적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다르다. 종교가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종교는 있으나 종교적인 삶은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백퍼센트 종교적인 사회 방글라데시에는 종교가 금하는 ‘술 문화’는 존재조차 할 수 없다. 술이 메인디쉬일 경우가 상당수인 한국의 회식문화는 이런 점에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게는 가장 ‘조심해’야 할 경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방글라데시에는 없는 문화는 술 문화예요. 방글라데시에서 술 먹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어요. 먹는 사람이 있다 해도 몰래 숨어서 먹고, 나쁜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요.” 적응에서 통합으로 : 제도를 활용할 것한국 생활 적응 ‘기초반’에서 요구되는 기술은 냉정한 현실 인식과 경계심(조심성)이다. 그 두 가지만으로도 한국 생활의 어려움은 반감될 수 있다. 그러나 적응 ‘심화반’으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술이 요구된다. 사하닷이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방법은 한국의 제도를 체계적이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법무부에서 주관하는 이민자 사회통합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통합은 이민자들의 한국 사회 적응 및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한국어 및 한국 문화, 한국 사회 이해 교육 등이 제공된다. 5단계로 구성된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이민자들에게는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귀화 신청 시 필기 및 면접시험이 면제되고 영주자격이나 거주 자격 신청 시에는 한국어 능력 입증 의무가 면제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사하닷은 한국이라는 녹록치 않은 이주의 공간에 소극적으로 적응하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자유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한 ‘매개’이자 ‘통로’로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성공적인 전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는 사회통합 프로그램 이수를 위해 다른 친구들 7명과 스터디 모임을 결성하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스터디 모임은 계속되고 있다. “오래 살아서 한국문화를 안다.”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통해 여전히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사통은 수업을 너무 오랫동안 하는 것이 어렵지만 다른 것은 다 좋다고 생각해요. 한국 선생님들이 착하고, 잘 가르치고, 재밌게 가르쳐 줬어요. 한국 문화, 사회에 대한 내용으로 내용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오래 살아서 한국문화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수업에서 배우는 것도 많아요. (사통을 통해) 한국어 공부 열심히 하면 비자 바꿀 수도 있어요.” 사하닷이 사회통합 프로그램의 혜택을 동료들과 공유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프로그램 참가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것이다. 한 지역의 경우 전체 사통 참가자의 70%가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었는데, 그들에게 프로그램을 소개한 사람이 바로 그다. 또 한 가지는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통해 체류 자격 변경에 성공한 사람들을 모아 공동체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사하닷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비자변경 2관왕이다. 그는 자신의 노하우를 동료들에게 전수하기를 원한다. 공동체의 이름은 “Get together”이다. 자유의 공간에서 : 노동자에서 사업가로, 사회활동가로비자변경을 통해 적응의 공간을 자유의 공간으로 변모시킨 사하닷이 집중하는 일은 두 가지이다. 우선 사업이다. 2018년 초 시작한 첫 번째 사업의 아이템은 ‘간식’이었다. 방글라데시 동료들이 한국에 입국할 때 마다 고향에서 간식을 사가지고 온다는 것에 착안하여 간식 공장을 설립하였다. 첫 번째 사업은 몇 달 만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좋았으나 유통경로를 확보하는 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가 구상하는 두 번째 사업 아이템은 ‘오퍼상’, 일종의 중개 무역업이다. 이를테면 방글라데시에서는 ‘저렴한’의상을 수입해서 한국에서 판매하고, 한국의 농기계를 (농기계가 매우 필요한) 방글라데시에 수출하는 것이다. 사업만큼이나 그가 공들이는 것은 사회 활동이다. 그는 한달에 한번씩, 방글라데시 동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법률 및 생활 상담을 해주고 있다. 필요한 경우에는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통역에 나서기도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계하는 커뮤니티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그의 다음 목표는 이 두 가지 일을 결합하는 것이다.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그를 기반으로 공적인 사회활동을 보다 체계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자라나는 방글라데시 어린이들을 위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교육 시설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적인 목표다. “한국에서 사업이 잘 되면, 방글라데시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그 곳에서 학교 끝난 아이들을 데려다 공부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한국어도 가르쳐주고 방글라데시어도 가르쳐주는. 아이들이 한국에 오면 한국말만 써서 방글라데시어를 잊어버릴 것 같아요. 계속 가르쳐야 해요.”이 일을 위해 “직장을 옮길 수도 있고,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고도 할 정도로 커뮤니티 기반의 사회활동은 사하닷에게 소중하다. (다음호에 계속)
    • Local-West
    • 화성
    2019-08-19
  • 노동자에서 사업가로, 사회활동가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사하닷’(1)
        국내 최고의 외국인주민 인권 옹호 기관인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소장 오경석)는 지난해 12월 ‘2018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경기도, 우리에게 맡겨요’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에 가득 차 있는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기 위해 기획됐다. 사회 문화적으로 낯선 이주의 공간에서, 길지 않은 시간에,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외국인주민을 발굴해 소개하는 작업은 우리 곁의 이주민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일곱 명의 이주민들을 따라가 보자. 프롤로그…사하닷은 방글라데시 브라만바리아 출신의 이주노동자이다.(사진 아래 오른쪽)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엘리트인 그는 대학원 졸업 후 금융회사에서 1년 정도 근무하다 2008년 한국에 입국했다. 입국 초기 여느 이주노동자와 다름없이 그 역시 경제, 사회, 문화적 차별이라는 혹독한 적응기를 경험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노동자들과 달랐다. 한 번도 어렵다는 두 번의 비자변경에 성공해 취업과 가족동반이 자유로운 ‘거주’ 이주민 자격(F-2)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10년 전 노동자였던 사하닷은 이제 사업가요, 사회활동가이기도 하다. 그가 단순한 적응을 넘어 좀 더 큰 자유를 갈망했던 이유는 한국을 단순한 이주의 공간이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한국은 앞으로 가족과 함께 살아갈 ‘친절하고 아름다운 나라’이다. 그는 친절하고 아름답지만 고향의 문화와는 70퍼센트 이상이 다른 이 나라에서, 방글라데시 동료 노동자들이 조금이나마 어려움을 덜 겪으며 꿈을 이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자신의 사업만큼이나 그들을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선다. 동료들에게 그는 믿음직한 한국 생활의 길잡이요, 안내자이다. 특히 그는 열렬한 사회통합 프로그램 전파자이다. 그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한국에서 자라고 있는 방글라데시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시설을 운영하는 것이다. 살기 편하지만 오기 힘든 나라 :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어요.사하닷은 2008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첫 발을 디뎠다. 그는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방글라데시의 엘리트이다. 졸업 후 1년여 금융회사에 근무했던 그가 한국행을 택한 이유는 간명하다. 방글라데시의 상황이 젊은 엘리트들에게도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기 어려울 정도로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한국의 70~80년대 정치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일자리도 없고, 취업을 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지요.” 한국에서 지낸 지난 10여년 그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0년 잠깐 귀국하여 취업 준비 기간 자신을 헌신적으로 보필해주었던 아내와 결혼하였다. 2014년 말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꿈꾸는 비자 변경, 그것도 두 번이나 연속으로 성공하였다. 그 결과 그의 위상은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E-9)에서 ‘전문인력’(E-7)으로, 전문 인력에서 취업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부여받는 ‘거주민’의 지위(F-2)로 격상되었다. 그는 이제 자유롭게 직업을 바꿀 수 있다. 고용될 수 있는 자유 뿐 아니라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는 자유도 있다. 가족을 초청해서 함께 살 수도 있다. 그는 그러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하던 사업을 잠시 접고 현재는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조만간 가족들과 재결합할 것이고, 그 때에는 다시 사업에 전념할 계획이다. 그에게 한국은 이제 이처럼 ‘살기 편한 곳’이고 ‘사람들도 다 친절’한 곳이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을 리 없다. 현재의 자유와 편안함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 사회에 적응’을 이미 끝낸 사하닷이기에 누릴 수 있는 보상일 것이다. 그는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그렇지만 오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 방글라데시 동료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눠주고 싶어 한다. 그들의 한국 생활 도우미요,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싶어한다.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방글라데시 사람이 많은데, 과거보다 더 어려워졌어요. 제가 올 때보다 10배 가량이나 어려워졌어요. 돈이 많고, 공부를 많이 해도 한국에 입국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어렵게 한국을 선택한 그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희망의 공간 한국 그러나 : 한국일은 어렵고 힘들어요다른 나라로 이주를 선택한 방글라데시 사람들 조차 희망할 정도로 한국은 인기있는 이주의 목적국이다. 그러나 ‘희망의 공간’은 어려움과 난관을 이겨낸 사람들에게는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한국 적응은 끝났다.”라고 사하닷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지난 10여년의 한국 생활 동안 그만큼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경험하고 그를 극복 혹은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자’로서 사하닷은 가스밸브 제조회사, 고무공장, 스폰지 제조공장, 농기구제조업체 등에서 일한 바 있다. 그 곳에서 그가 경험한 ‘어렵고 힘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 번 째 사업장의 고용주는 계약과는 다르게 그에게 지사 근무를 강요했다. 혹독한 노동 조건과 노동 강도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공통적이었다. 고무 공장의 유독가스는 견디기 어려웠다. 농기구제조업체의 페인트 작업은 특수마스크를 착용하고도 한 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이나 안전 장구는 사비로 구매해야만 한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혹독한 조건에서, 하루 열네시간에 가까운 고강도 노동을 감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예외 없이 처우와 승진에서의 차별과 불이익을 경험해야만 한다. 사하닷의 경우 퇴직금 지급을 거부하는 사업주를 노동부에 진정해서, 일부를 받아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승진에서의 차별은 그에게도 여전히 ‘넘사벽’의 장애물이다. “5년 이상 일을 잘 했는데요, 한국사람 및 다른 외국인과의 차별이 있어서 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인과 중국인의 경우는 2년만 지나도 반장이나 과장으로 승진을 시켜주었는데, 방글라데시 사람들이나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사하닷은 방글라데시 동료들에게 ‘희망의 공간’의 현실을 분명히 말해준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어요.” 방글라데시와 한국문화는 70% 이상 다르다고 생각해요 : 조심해!사하닷이 평가하기에, 한국 문화와 방글라데시 문화 사이에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훨씬 크다. 그러한 문화적 차이가 결정적인 어려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 그것은 ‘조심’이다. 그래서 한국에 처음 온 동료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게 그가 맨 처음 하는 말은 “조심해!”이다. 가장 많이 하는 말 역시 “조심해!”이다. 그가 경험적으로 터득한 ‘조심’의 목록에는 ‘노동 규율, 법질서, 추위, 음식 및 회식 문화’ 등이 포함된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노동 규율이다. 사업장 내에서의 안전이다. 주지하다시피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율은 한국인 노동자의 무려 6배에 달한다. 낯선 사업장에서의 정보 부족이 외국인 산재를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사하닷은 공장에서 서두르지 말고 조심할 것을 가장 강조한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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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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