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11-25(금)

다문화가족
Home >  다문화가족  >  기타

실시간뉴스
  •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 없도록 세입자 권한 강화한다
        정부가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 방지를 위해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세금 체납 여부 등 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어요. <사진=국토교통부> 법무부와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 피해방지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기로 했어요. 이번 개정안은 예비 임차인(임차인이 되려는 사람)이 임대인(집주인)의 선순위보증금 등 임대차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넣기로 했어요.  ????선순위보증금 모두 파악 가능???? 선순위보증금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다가구 주택, 그러니까 내가 살고자 하는 집이 빌라인 경우 한 채에 여러 가구가 입주해 사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때 나 외의 다른 가구의 보증금 전액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해당 빌라의 시세가 10억원인데 다른 4가구의 보증금이 이미 10억원에 달한다면 내가 추가로 전세금을 내고 사는 것이 맞지 않지요.  새로운 법률 개정안은 예비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선순위보증금 등 정보 제공에 관한 동의를 요구할 수 있고, 임대인은 이에 대해 동의할 것을 의무화했어요. ????집주인의 세금체납 여부 확인???? 예비 임차인이 임대인의 납세증명서 제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신설했어요.  현행법은 임대인의 보증금 보다 국가의 세금을 우선해서 갚도록 하고 있어요. 따라서 임대인이 세금을 일정 금액 체납한 상태라면 나중에 집주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낸 전세금 보다 국가 세금을 먼저 가져가게 되므로 큰 문제가 발생해요. 그럼에도 현재는 예비 임차인이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문제가 됐지요. 앞으로는 집주인이 임차인의 납세증명서 제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임차인은 의심할 수 밖에 없고 이 때문에 임대차 계약도 안 될 가능성이 높아질 거예요.  파파야스토리
    • 한국어
    • 행사
    • 전체
    2022-11-25
  • 한국에서는 저소득층이거나 다자녀 가정이라면 대학교 학비 무료!!!
      한국에서 저소득층 학생이거나 다자녀 가정의 학생은 학비 부담 없이 대학교에 다닐 수 있어요.<사진=한국장학재단> 국가가 지급하는 국가장학금은 대학생의 등록금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각 가정의 소득과 재산이 일정 수준(학자금지원 8구간) 이하인 대학생 중 성적 기준 등을 충족한 학생에게 국가가 지원하는 장학금이에요. 국가장학금은 I유형과 II유형, 다자녀 장학금 등 3가지로 나뉘어요. 장학금 지급 기준은 정부가 결정한 학자금지원 8구간에 따라 지원해요. 국가장학금을 신청하면 정부가 학생 본인과 가구원(부모 또는 배우자)의 소득·재산·부채 등을 파악해 소득인정액을 계산하고 이에 따라 1~10구간까지 결정해요.  I 유형 국가장학금 I 유형부터 먼저 설명할게요. 기초생활수급 가정과 차상위 가정의 대학생은 학자금지원구간을 계산할 필요 없이 바로 장학금을 지급해요. 첫째 자녀라면 연간 700만원까지 지원하고 둘째 자녀부터는 학자금 전액을 지원해요.^_^ 1~3구간 학생은 연간 520만원, 4~6구간은 390만원, 7~8구간은 350만원을 지원해요. 구간이 높아질수록 지원금액이 줄어들어요. I유형에서는 8구간까지만 장학금을 지급해요. Ⅱ유형 국가장학금 국가장학금Ⅱ유형은 대학별 자체 지원기준에 따라 9구간 학생들까지 지원이 가능해요. I유형은 학생 본인이 신청하지만 II유형은 대학교의 판단에 따르고 대학교가 신청하는 것이에요. 지원금액도 대학교의 자체기준에 따라 학비 이내에서 결정돼요. 모든 대학이 가능한 것은 아니고 대학교가 국가장학금Ⅱ유형 사업에 참여하는 경우에만 가능해요. 다만, 4년제 대학만 162개교가 참여하고 있으므로 왠만하면 해당될 거라고 봐요. (●'◡'●) 다자녀 국가장학금 다자녀 국가장학금은 3자녀 이상 가구 학생이 신청할 수 있어요. 8구간 이하일 때 지원받을 수 있고 첫째와 둘째 자녀의 연간 최대 지원금액은 I유형과 비슷하거나 좀 더 많아요. 다만 셋째 자녀 이상인 학생은 모두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어요. 대박^^ (❁´◡`❁) 언제 신청해요?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은 오는 11월 24일부터 12월 29일 저녁 6시까지 2023학년도 1학기 국가장학금 신청을 받아요. 신청은 재학생·신입생·편입생·재입학생·복학생 등 모든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장학재단 누리집(www.kosaf.go.kr)과 모바일 앱에서 24시간 가능해요. 3가지 유형 모두 이 기간에 신청할 수 있어요.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뒤에는 내가 몇 구간에 해당하는지가 가장 궁금하잖아요? 교육부는 학자금지원구간 산정 완료 여부를 휴대전화와 전자우편으로 안내하기로 했어요. 참, 구간이 10구간 이상이라 장학금을 신청할 수 없다면 학자금 대출이 가능해요^^ 상담이 필요하다면? 이번 국가장학금 신청 결과는 한국장학재단 누리집(www.kosaf.go.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세부 상담이 필요할 경우 전화 상담(1599-2000) 또는 재단의 각 지역센터에 방문해 일대일 맞춤형 상담을 받으면 돼요. 또한 신청자는 내년 1월 5일 저녁 6시까지 가구원 정보 제공 동의 및 필요 서류 제출을 완료해야 해요.  다만 가구원이 해외체류 등으로 동의가 어려울 때는 신분증 사본 등 동의서를 우편 또는 팩스로 제출하거나 재단의 각 지역 센터에 방문하면 돼요. 아, 중요한 요건 중의 하나인 성적 기준을 설명하지 않았네요.^^ 신입생이라면 성적 기준이 적용되지 않지만 재학생이라면 직전학기 성적이 70점(C학점) 이상이어야 국가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어요.  C학점은 좀 놀면서 대학교를 다녀도 받을 수 있는 성적이니까 모두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_~ 파파야스토리
    • 한국어
    • 행사
    • 전체
    2022-11-24
  • 낯설고 힘든 한국생활...하지만 나는 배워야 하고 또 도전해야 한다
        다음 글은 지난 11월 5일 진행된 ‘군포시 가족 홈커밍 데이’에서 북한 출신 이유리 씨가 이주여성 한국적응수기를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유리 씨는 싱글맘으로서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고 있지만 아직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유리입니다. 저는 현재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저의 고향은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고 꿈에서만 갈 수 있는 북한입니다. 저는 26년간 북한 생활을 마치고 중국으로 가게 되어 4년간 생활하면서 지금의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신분증이 없어(불법체류 상태) 매일 숨죽이고 살아가던 중 공안(경찰)이 잡으러 왔는데 운 좋게 풀숲이 무성한 산으로 숨어 목숨만 건질 수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니 피부가 무언가에 긁혀 시뻘건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번 더 경찰이 잡으러 온다면 이번에는 아기를 안고 산으로 도망갈 수도 없어 저는 5개월 된 아들과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배워야 한다, 배워야 한다 2017년 걸음마 떼는 아들과 한국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보았는데 그것만으로 나 자신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처음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 주변 언니의 도움으로 한국의 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상자 포장하는 일이었는데 제가 말이 어눌하고 신입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제일 무거운 50킬로그램 짜리 상자들을 나르게 하였습니다. 저는 그 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그냥 열심히만 했습니다.  무척 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곳에서 옷이 젖을 정도로 일을 하다가 사무실에 들어가니 얼마나 시원한지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여성분이 의자에 편히 앉아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저런 일은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반장님께 여쭤보았습니다. 반장님은 회계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배우면 시원한 곳에서 일할 수 있고, 배우지 못하면 죽기 살기로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저는 아르바이트 경험을 토대로 배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자부담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하여 오전에는 공부, 오후에는 아르바이트, 주말에는 실습을 하며 9개월 만에 요양보호사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차별 이후 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제가 1학년 시절 아들이 4살이었습니다. 아침에 눈도 못 뜨는 아기를 안고 어린이집 문을 제일 먼저 두드리고 또 제일 늦게 데리러 가면 엄마로서 정말 미안했고 또 너무 지쳐있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이기 싫었습니다.  엄마는 괜찮은 척 씩씩한 척 연기를 자주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수업마치고 봉사와 아르바이트, 조별과제, 학교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석하였고 하루 몇 시간씩 자면서 하다 보니 체력이 따라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닌 이유는 차별과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간호조무사 실습을 할 때 제가 실습기구 하나만 틀리게 놓아도 치과 선생님들은 “저 사람은 북한에서 탈북했대. 그래서 뭘 모르나 봐“라며 뒤에서 계속 수군거리곤 하였습니다. 저는 한국 생활하면서 차별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투명인간이 무엇인지를 체험하였습니다.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저에게는 화장실이 가장 편한 장소였습니다. 상담을 받으며 저만 차별당하는 게 아니라 처음에 회사에 들어가면 한국사람들도 그런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삶...나는 어디로 가나 대학 생활을 하면서 북한에서 왔으니 모를 때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했더니 오히려 도와주려고 하는 교수님들과 친구들이 더 많았습니다. 저는 배움을 멈추지 않고 방학을 이용하여 사회복지에 필요한 컴퓨터와 회계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저에게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자유 대한민국에 왔는데 쳇바퀴 돌 듯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3학년이 됐을 때는 “과연 나는 왜 이렇게 사는지... 이렇게 뛰어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걸까?”라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한국에 도착한 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따뜻함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는 복지사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복지사 선생님들은 무엇이든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는 데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불안하지만 나에겐 힘이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무엇이든 일만 맡겨주시면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가득 차 있습니다. 생각보다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내년에 학교를 졸업하면 일자리를 찾아야 하기에 불안합니다.  제가 벌어야만 아들을 키우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일 때는 일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지만 저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우선이라고 봅니다.  저는 북한이탈주민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담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겸손해야 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통일된 이후 복지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북한 주민들에게 상담을 알리고 또 한분 한분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만나는 모든 분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망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차별은 있어도 그 차별을 딛고 서는 힘도 나에게 있다”라고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 한국어
    • 행사
    • 전체
    2022-11-21
  • 한국에서 성공적인 외국인근로자로 일하다 가정을 이룬 이주여성
      우리 가족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형제자매도 많았습니다. 저는 10남매 중 8째입니다. 위로 언니 오빠가 7명이나 있고 동생도 2명 있습니다. E-9에서 E-7으로 비자 전환 머나먼 한국 땅에서 혼자 살면서 야간 근무를 하다 보니 그리움으로 마음도 병들고 몸도 계속 아팠습니다. 하지만 꿈이 있었고 힘든 시간을 견디며 살다 보니 한국 생활에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열심히 한국말을 공부한 덕분에 토픽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비자도 전문취업 비자인 E-7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 비자 덕분에 한국에서 더 오래 체류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저는 베트남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한동안 결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실 원장님이 좋은 사람이 있다고 소개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첫 번째 데이트를 하고 나서 우리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게 되었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했습니다.  의사소통은 중요한 문제 저는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하느라고 했지만, 한국 며느리들과는 달랐는지 가족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남편과는 ‘자녀 양육’과 ‘교육 방법’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다투는 일이 많았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잘하게 되면 남편이나 시어머니와 소통이 원활해지고 그러다 보면 서로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며 어려운 문제도 하나씩 해결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 저희 가족은 남편과 저, 아이 2명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 소망은 우리 가정에 항상 웃음과 건강이 가득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한국어
    • 행사
    • 전체
    2022-11-16
  • 수도권의 부동산 규제 대거 풀렸다...주택 담보대출 더 많이 가능^^
        한국 정부가 서울과 경기 과천, 성남(분당·수정), 하남, 광명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을 부동산 규제지역에서 해제했어요. 규제 해제의 중요한 의미는 집을 담보로 받을 수 있는 대출이 많아진다는 것이에요. 이에 따라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있던 경기도 9곳이 해제됐어요. 수원, 안양, 안산단원, 구리, 군포, 의왕, 용인수지·기흥, 동탄2가 대상이에요. 이에 따라 서울 전역과 과천, 성남(분당·수정), 하남, 광명 4곳만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등 2중 규제지역으로 남게 됐어요. ????규제 해제는 어떤 의미????? 가장 강력한 제재를 받는 규제가 바로 투기지역인데 투기지역은 서울의 강남 등 일부 지역만 해당이 돼요. 하지만 이게 원칙이고 무주택자와 1주택자에게는 예외가 적용돼요. 자세한 담보대출비율은 부동산중개업소 등에 문의하는게 좋아요. 왜냐면 너무 자주 바뀌기 때문이에요.    이런 규제에서 완전히 해제된 지역은 집값의 최대 90%까지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살 수 있어요. 어떤 빌라는 100%도 가능하다고 해요. 놀랍지요? 물론 주택을 지은 시행사와 금융기관이 협의하는 바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요.
    • 한국어
    • 행사
    • 전체
    2022-11-14
  •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 한국 정부에서 도우미를 보내줘요!
        아이돌봄서비스란? 아이돌봄서비스는 부모가 맞벌이 등으로 자녀를 돌볼 수 없는 경우에 아이돌보미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자녀를 돌봐주는 것을 말해요. <사진=여성가족부> 아이돌봄서비스는 크게 시간제 서비스와 영아종일제 서비스 2가지가 있어요. ‘시간제 서비스’ 시간제 서비스는 생후 3개월 이상부터 만 12세 이하 아동까지를 대상으로 이뤄져요. 이용요금은 ▲(기본형) 시간당 1만 550원 ▲(종합형) 시간당 1만 3720원이에요. 이 금액을 다 내는 것이 아니라 가~다 유형에 따라 본인 부담액이 기본형인 경우 1,582원~8,967원까지 달라져요. 정부지원시간은 연 840시간이지만 정부지원 시간을 초과해도 전액 본인부담으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요. 다만, 야간과 휴일 할증도 있어 이용 시 확인이 필요해요. 기본형은 등하원 등 일반적인 돌봄 활동으로 이뤄지며 종합형은 기본형에다 자녀를 위한 식사준비, 설거지 등 가사서비스를 포함해요. ‘영아종일제 서비스’ 영아종일제 서비스는 생후 3개월 이상부터 만 36개월 이하의 영아를 대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예요. 정부지원시간은 월 200시간으로 이용요금은 시간당 1만 550원이에요. 영아종일제 서비스는 가사활동을 제외한 이유식 먹이기, 기저귀 갈기, 목욕 등이 당연히 포함돼요. 이외 서비스는 제공기관과 협의를 해야 해요. 평소에는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아이가 갑자기 질병에 걸려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 이용하는 ‘질병감염아동지원 서비스’도 있어요. 아이돌봄서비스 이용방법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국민행복카드가 필요해요. 이미 국민행복카드를 보유하고 있다면 기존 카드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요. 만일 카드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카드사 홈페이지 또는 콜센터를 통해 신청할 수 있어요. 아이돌봄서비스는 소득기준에 따른 가구 유형별로 차등해 정부가 지원해요. 양육공백이 발생한 가정 중 기준 중위소득이 150% 이하인 가구라면 ‘가~다’형에 해당돼요. 동주민센터에서 사회보장급여를 신청해 가~다 유형이 결정되면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양육공백이 발생하지 않는 가정(전업주부 등) 또는 기준 중위소득이 150%를 초과하는 가구는 ‘라’형에 해당해요.  신청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아이돌봄서비스 홈페이지(www.idolbom.go.kr)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파파야스토리
    • 한국어
    • Hot Issue
    • 헤드라인
    2022-11-09

실시간 기타 기사

  •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 없도록 세입자 권한 강화한다
        정부가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 방지를 위해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세금 체납 여부 등 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어요. <사진=국토교통부> 법무부와 국토교통부는 전세사기 피해방지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하기로 했어요. 이번 개정안은 예비 임차인(임차인이 되려는 사람)이 임대인(집주인)의 선순위보증금 등 임대차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넣기로 했어요.  ????선순위보증금 모두 파악 가능???? 선순위보증금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다가구 주택, 그러니까 내가 살고자 하는 집이 빌라인 경우 한 채에 여러 가구가 입주해 사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때 나 외의 다른 가구의 보증금 전액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해당 빌라의 시세가 10억원인데 다른 4가구의 보증금이 이미 10억원에 달한다면 내가 추가로 전세금을 내고 사는 것이 맞지 않지요.  새로운 법률 개정안은 예비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선순위보증금 등 정보 제공에 관한 동의를 요구할 수 있고, 임대인은 이에 대해 동의할 것을 의무화했어요. ????집주인의 세금체납 여부 확인???? 예비 임차인이 임대인의 납세증명서 제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신설했어요.  현행법은 임대인의 보증금 보다 국가의 세금을 우선해서 갚도록 하고 있어요. 따라서 임대인이 세금을 일정 금액 체납한 상태라면 나중에 집주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낸 전세금 보다 국가 세금을 먼저 가져가게 되므로 큰 문제가 발생해요. 그럼에도 현재는 예비 임차인이 임대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문제가 됐지요. 앞으로는 집주인이 임차인의 납세증명서 제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임차인은 의심할 수 밖에 없고 이 때문에 임대차 계약도 안 될 가능성이 높아질 거예요.  파파야스토리
    • 한국어
    • 행사
    • 전체
    2022-11-25
  • 한국에서는 저소득층이거나 다자녀 가정이라면 대학교 학비 무료!!!
      한국에서 저소득층 학생이거나 다자녀 가정의 학생은 학비 부담 없이 대학교에 다닐 수 있어요.<사진=한국장학재단> 국가가 지급하는 국가장학금은 대학생의 등록금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각 가정의 소득과 재산이 일정 수준(학자금지원 8구간) 이하인 대학생 중 성적 기준 등을 충족한 학생에게 국가가 지원하는 장학금이에요. 국가장학금은 I유형과 II유형, 다자녀 장학금 등 3가지로 나뉘어요. 장학금 지급 기준은 정부가 결정한 학자금지원 8구간에 따라 지원해요. 국가장학금을 신청하면 정부가 학생 본인과 가구원(부모 또는 배우자)의 소득·재산·부채 등을 파악해 소득인정액을 계산하고 이에 따라 1~10구간까지 결정해요.  I 유형 국가장학금 I 유형부터 먼저 설명할게요. 기초생활수급 가정과 차상위 가정의 대학생은 학자금지원구간을 계산할 필요 없이 바로 장학금을 지급해요. 첫째 자녀라면 연간 700만원까지 지원하고 둘째 자녀부터는 학자금 전액을 지원해요.^_^ 1~3구간 학생은 연간 520만원, 4~6구간은 390만원, 7~8구간은 350만원을 지원해요. 구간이 높아질수록 지원금액이 줄어들어요. I유형에서는 8구간까지만 장학금을 지급해요. Ⅱ유형 국가장학금 국가장학금Ⅱ유형은 대학별 자체 지원기준에 따라 9구간 학생들까지 지원이 가능해요. I유형은 학생 본인이 신청하지만 II유형은 대학교의 판단에 따르고 대학교가 신청하는 것이에요. 지원금액도 대학교의 자체기준에 따라 학비 이내에서 결정돼요. 모든 대학이 가능한 것은 아니고 대학교가 국가장학금Ⅱ유형 사업에 참여하는 경우에만 가능해요. 다만, 4년제 대학만 162개교가 참여하고 있으므로 왠만하면 해당될 거라고 봐요. (●'◡'●) 다자녀 국가장학금 다자녀 국가장학금은 3자녀 이상 가구 학생이 신청할 수 있어요. 8구간 이하일 때 지원받을 수 있고 첫째와 둘째 자녀의 연간 최대 지원금액은 I유형과 비슷하거나 좀 더 많아요. 다만 셋째 자녀 이상인 학생은 모두 전액을 지원받을 수 있어요. 대박^^ (❁´◡`❁) 언제 신청해요?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은 오는 11월 24일부터 12월 29일 저녁 6시까지 2023학년도 1학기 국가장학금 신청을 받아요. 신청은 재학생·신입생·편입생·재입학생·복학생 등 모든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장학재단 누리집(www.kosaf.go.kr)과 모바일 앱에서 24시간 가능해요. 3가지 유형 모두 이 기간에 신청할 수 있어요.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뒤에는 내가 몇 구간에 해당하는지가 가장 궁금하잖아요? 교육부는 학자금지원구간 산정 완료 여부를 휴대전화와 전자우편으로 안내하기로 했어요. 참, 구간이 10구간 이상이라 장학금을 신청할 수 없다면 학자금 대출이 가능해요^^ 상담이 필요하다면? 이번 국가장학금 신청 결과는 한국장학재단 누리집(www.kosaf.go.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세부 상담이 필요할 경우 전화 상담(1599-2000) 또는 재단의 각 지역센터에 방문해 일대일 맞춤형 상담을 받으면 돼요. 또한 신청자는 내년 1월 5일 저녁 6시까지 가구원 정보 제공 동의 및 필요 서류 제출을 완료해야 해요.  다만 가구원이 해외체류 등으로 동의가 어려울 때는 신분증 사본 등 동의서를 우편 또는 팩스로 제출하거나 재단의 각 지역 센터에 방문하면 돼요. 아, 중요한 요건 중의 하나인 성적 기준을 설명하지 않았네요.^^ 신입생이라면 성적 기준이 적용되지 않지만 재학생이라면 직전학기 성적이 70점(C학점) 이상이어야 국가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어요.  C학점은 좀 놀면서 대학교를 다녀도 받을 수 있는 성적이니까 모두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_~ 파파야스토리
    • 한국어
    • 행사
    • 전체
    2022-11-24
  • 낯설고 힘든 한국생활...하지만 나는 배워야 하고 또 도전해야 한다
        다음 글은 지난 11월 5일 진행된 ‘군포시 가족 홈커밍 데이’에서 북한 출신 이유리 씨가 이주여성 한국적응수기를 발표한 내용입니다. 이유리 씨는 싱글맘으로서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고 있지만 아직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유리입니다. 저는 현재 대학교 4학년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저의 고향은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고 꿈에서만 갈 수 있는 북한입니다. 저는 26년간 북한 생활을 마치고 중국으로 가게 되어 4년간 생활하면서 지금의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신분증이 없어(불법체류 상태) 매일 숨죽이고 살아가던 중 공안(경찰)이 잡으러 왔는데 운 좋게 풀숲이 무성한 산으로 숨어 목숨만 건질 수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니 피부가 무언가에 긁혀 시뻘건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번 더 경찰이 잡으러 온다면 이번에는 아기를 안고 산으로 도망갈 수도 없어 저는 5개월 된 아들과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배워야 한다, 배워야 한다 2017년 걸음마 떼는 아들과 한국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보았는데 그것만으로 나 자신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처음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 주변 언니의 도움으로 한국의 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상자 포장하는 일이었는데 제가 말이 어눌하고 신입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제일 무거운 50킬로그램 짜리 상자들을 나르게 하였습니다. 저는 그 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그냥 열심히만 했습니다.  무척 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곳에서 옷이 젖을 정도로 일을 하다가 사무실에 들어가니 얼마나 시원한지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여성분이 의자에 편히 앉아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저런 일은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반장님께 여쭤보았습니다. 반장님은 회계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배우면 시원한 곳에서 일할 수 있고, 배우지 못하면 죽기 살기로 시키는 일만 해야 한다는 사실을요. 저는 아르바이트 경험을 토대로 배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자부담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하여 오전에는 공부, 오후에는 아르바이트, 주말에는 실습을 하며 9개월 만에 요양보호사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차별 이후 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제가 1학년 시절 아들이 4살이었습니다. 아침에 눈도 못 뜨는 아기를 안고 어린이집 문을 제일 먼저 두드리고 또 제일 늦게 데리러 가면 엄마로서 정말 미안했고 또 너무 지쳐있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이기 싫었습니다.  엄마는 괜찮은 척 씩씩한 척 연기를 자주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수업마치고 봉사와 아르바이트, 조별과제, 학교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석하였고 하루 몇 시간씩 자면서 하다 보니 체력이 따라주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닌 이유는 차별과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간호조무사 실습을 할 때 제가 실습기구 하나만 틀리게 놓아도 치과 선생님들은 “저 사람은 북한에서 탈북했대. 그래서 뭘 모르나 봐“라며 뒤에서 계속 수군거리곤 하였습니다. 저는 한국 생활하면서 차별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투명인간이 무엇인지를 체험하였습니다.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저에게는 화장실이 가장 편한 장소였습니다. 상담을 받으며 저만 차별당하는 게 아니라 처음에 회사에 들어가면 한국사람들도 그런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삶...나는 어디로 가나 대학 생활을 하면서 북한에서 왔으니 모를 때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했더니 오히려 도와주려고 하는 교수님들과 친구들이 더 많았습니다. 저는 배움을 멈추지 않고 방학을 이용하여 사회복지에 필요한 컴퓨터와 회계 자격증을 취득하였습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저에게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자유 대한민국에 왔는데 쳇바퀴 돌 듯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3학년이 됐을 때는 “과연 나는 왜 이렇게 사는지... 이렇게 뛰어서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걸까?”라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한국에 도착한 뒤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따뜻함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는 복지사라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복지사 선생님들은 무엇이든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는 데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불안하지만 나에겐 힘이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무엇이든 일만 맡겨주시면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가득 차 있습니다. 생각보다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열심히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내년에 학교를 졸업하면 일자리를 찾아야 하기에 불안합니다.  제가 벌어야만 아들을 키우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일 때는 일시적으로 지원해주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지만 저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우선이라고 봅니다.  저는 북한이탈주민들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담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겸손해야 하고 전문적인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통일된 이후 복지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북한 주민들에게 상담을 알리고 또 한분 한분의 아픈 마음을 치유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를 만나는 모든 분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망이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차별은 있어도 그 차별을 딛고 서는 힘도 나에게 있다”라고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 한국어
    • 행사
    • 전체
    2022-11-21
  • 한국에서 성공적인 외국인근로자로 일하다 가정을 이룬 이주여성
      우리 가족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형제자매도 많았습니다. 저는 10남매 중 8째입니다. 위로 언니 오빠가 7명이나 있고 동생도 2명 있습니다. E-9에서 E-7으로 비자 전환 머나먼 한국 땅에서 혼자 살면서 야간 근무를 하다 보니 그리움으로 마음도 병들고 몸도 계속 아팠습니다. 하지만 꿈이 있었고 힘든 시간을 견디며 살다 보니 한국 생활에 점점 익숙해졌습니다.  열심히 한국말을 공부한 덕분에 토픽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비자도 전문취업 비자인 E-7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이 비자 덕분에 한국에서 더 오래 체류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저는 베트남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한동안 결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갔는데 미용실 원장님이 좋은 사람이 있다고 소개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첫 번째 데이트를 하고 나서 우리는 결혼을 전제로 사귀게 되었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했습니다.  의사소통은 중요한 문제 저는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하느라고 했지만, 한국 며느리들과는 달랐는지 가족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았습니다. 특히 남편과는 ‘자녀 양육’과 ‘교육 방법’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다투는 일이 많았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잘하게 되면 남편이나 시어머니와 소통이 원활해지고 그러다 보면 서로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이며 어려운 문제도 하나씩 해결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 저희 가족은 남편과 저, 아이 2명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 소망은 우리 가정에 항상 웃음과 건강이 가득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한국어
    • 행사
    • 전체
    2022-11-16
  • A multicultural family that started a family after working as a successful foreign worker in Korea
    The following article is a presentation by HoSuJin from Vietnam on how to adapt to Korea by marriage immigrant women at the ‘Family Homecoming Day in Gunpo City’ held on November 5th. We introduce you to the life, happiness, and hope for the future of married immigrant women who had a hard time adjusting to life in Korea. <사진=파파야스토리> Hello. My name is HoSujin from Ho Chi Minh City in southern Vietnam. I was born and raised in the poor countryside of Ho Chi Minh City. My family was struggling financially and had many brothers and sisters. I am the 8th of 10 siblings. Above me, I have 7 older sisters or brothers and 2 younger siblings. Perhaps because I had many siblings, I was matured in early age, and I knew from a young age that our family was in a difficult situation. So I thought that I should study hard, succeed, and help my parents. For this reason, I dreamed of coming to Korea to earn money, and finally came to Korea as a foreign worker. Visa conversion from E-9 to E-7 When I first came to Korea, it was very difficult because the weather and food were different from my hometown. It was also the first time I was living alone away from my family, so I missed my hometown and family so much. Living alone in the faraway land of Korea and working the night shift, my heart and body were constantly sick with longing. However, I had a dream, and as I endured difficult times, I gradually got used to life in Korea. As I got used to life in Korea little by little, I thought that I should use this time to study Korean because I work overtime at work and have time during the day. So I went to the Multicultural Family Support Center and studied Korean diligently. Thanks to studying Korean hard, I got a good score in the TOPIK test and was able to change my visa to the E-7, a professional employment visa. Thanks to this visa, it is possible to stay longer in Korea. Married But Other Difficulties I didn't think about marriage for a while because I needed to earn money to support my family in Vietnam. Then one day, I went to a hair salon to get my hair done, and the head of the hair salon said he would introduce me to a good person. The person to introduce is an old regular customer of the director, and he was born in 1985, the same age as me. After a while, my husband contacted me to meet, and we met in the neighborhood, had dinner, and went to a coffee shop to talk more about each other. After our first date like this, we started dating on the premise of getting married, we fell for each other and we got married 6 months after we met. Since I lived alone away from my family for a long time, I was very excited and happy to think that I would have a family in Korea. But after marriage, a different difficult thing happened. Communication is an important issue Since I am a foreigner, I am not good at Korean, so I think I did not understand what my husband and mother-in-law wanted. There were times when my mother-in-law disappointments of me because of misunderstandings and upsets between us. I tried to work hard in my own way, but it was different from Korean daughters-in-law, so I bumped into my family a lot. In particular, I often quarreled with my husband because we had different ideas about ‘raising children’ and ‘education methods’. It is said that most multicultural families have many conflicts of opinion due to differences in language, customs, and parenting methods. This problem is not just a problem in our family, it is a problem for all multicultural families. So I thought I should study Korean harder. I am positive that if I become good at Korean, communication with my husband or mother-in-law will become smoother, and then we will understand each other more deeply, and difficult problems will be resolved one by one. Happier Life in Korea There were many ups and downs, but now my family is living happily with my husband, me, and two children. Sometimes I feel upset, but nevertheless, I am grateful that my husband and mother-in-law are always by my side and take care of my two precious children together. My wish is that our home is always full of laughter and health. I hope you all are always healthy and happy.
    • 한국어
    • 행사
    • English
    2022-11-16
  • ครอบครัวพหุวัฒนธรรมที่เริ่มต้นครอบครัวหลังจากทำงานเป็นแรงงานต่างชาติที่ประสบความสำเร็จในเกาหลี
    สวัสดีค่ะ ดิฉันชื่อโฮซูจิน มาจากเมืองโฮจิมินห์ทางตอนใต้ของเวียดนาม ดิฉันเกิดและเติบโตในชนบทที่ยากจนของเมืองโฮจิมินห์ ครอบครัวของดิฉันลำบากทางการเงินและมีพี่น้องหลายคน ดิฉันเป็นลูกคนที่ 8 ในพี่น้องทั้งหมด 10 คน มีพี่สาวและพี่ชาย 7 คน กับน้องสาว 2 คน <รูปภาพ = Papaya Story> อาจเป็นเพราะว่าดิฉันมีพี่น้องหลายคน ดิฉันจึงโตเร็ว และดิฉันรับรู้ตั้งแต่ยังเป็นเด็กว่าครอบครัวของเราอยู่ในสถานการณ์ที่ยากลำบาก เลยคิดว่าควรตั้งใจเรียน และเรียนให้จบจะได้ช่วยเหลือพ่อแม่ ด้วยเหตุนี้ดิฉันจึงใฝ่ฝันที่จะมาเกาหลีเพื่อหาเงิน และสุดท้ายก็มาที่เกาหลี ในฐานะแรงงานต่างชาติ   การเปลี่ยนวีซ่าจาก E-9 เป็น E-7 ตอนที่ดิฉันมาเกาหลีครั้งแรก มันเหนื่อยมากเพราะอากาศและอาหารแตกต่างจากบ้านเกิดของดิฉัน และนี่เป็นครั้งแรกที่ดิฉันอยู่คนเดียว ห่างไกลจากครอบครัว ดิฉันจึงคิดถึงบ้านเกิดและครอบครัวมาก การอยู่คนเดียวในเกาหลีอันไกลโพ้นและการทำงานกะกลางคืน ทำให้หัวใจและร่างกายของดิฉันป่วยด้วยความคิดถึง อย่างไรก็ตาม ดิฉันมีความฝัน และในขณะที่ดิฉันอดทนกับช่วงเวลาที่ยากลำบาก ดิฉันค่อยๆ คุ้นเคยกับการใช้ชีวิตในเกาหลี พอชินกับการใช้ชีวิตในเกาหลีทีละเล็กทีละน้อย ดิฉันก็คิดว่าควรใช้เวลานี้เรียนภาษาเกาหลี เพราะดิฉันทำงานกะกลางคืนในทำงาน และมีเวลาว่างช่วงกลางวัน ดังนั้นดิฉันจึงไปที่ศูนย์ช่วยเหลือครอบครัวพหุวัฒนธรรมและเรียนภาษาเกาหลีอย่างขยันขันแข็ง ต้องขอขอบคุณการเรียนภาษาเกาหลีอย่างหนัก ดิฉันได้คะแนนที่ดีในการสอบ TOPIK และสามารถเปลี่ยนวีซ่าเป็น E-7 ซึ่งเป็นวีซ่า การจ้างงานแบบมืออาชีพได้ ด้วยวีซ่านี้ทำให้สามารถอยู่ในเกาหลีได้นานขึ้น   แม้ว่าจะแต่งงานแล้วแต่ก็มีปัญหาอื่น ๆ ดิฉันไม่ได้คิดเรื่องแต่งงานมาสักระยะแล้ว เพราะดิฉันต้องหาเงินไปเลี้ยงครอบครัวที่เวียดนาม แล้ววันหนึ่งดิฉันไปร้านทำผมเพื่อทำผม และเจ้าของร้านทำผมบอกว่าเขาจะแนะนำดิฉันให้รู้จักกับคนดีๆ คนที่จะแนะนำเป็นลูกค้าประจำของเจ้าของร้าน เขาเกิดปี 1985 อายุเท่ากันกับดิฉัน หลังจากนั้นไม่นานสามีของดิฉันก็ติดต่อมาว่าให้ มาเจอกัน และเราพบกันละแวกบ้าน ทานอาหารเย็นและไปร้านกาแฟ เพื่อพูดคุยกันมากขึ้น หลังจากเดทแรกแบบนี้ เราเริ่มคบกันโดยตั้งใจว่าจะแต่งงานกัน เราตกหลุมรักกันและแต่งงานกันหลังจากเจอกันได้ 6 เดือน เนื่องจากดิฉันอาศัยอยู่คนเดียวห่างจากครอบครัวเป็นเวลานาน ดิฉันตื่นเต้นและมีความสุขมากที่คิดว่าจะมีครอบครัวในเกาหลี แต่หลังจากแต่งงานแล้วมีเรื่องที่ยากลำบากเกิดขึ้นซึ่งแตกต่างออกไป   การสื่อสารเป็นเรื่องสำคัญ เนื่องจากดิฉันเป็นชาวต่างชาติ ดิฉันไม่เก่งภาษาเกาหลี ดังนั้นดิฉันคิดว่าดิฉันไม่เข้าใจสามีและแม่สามีว่าต้องการอะไร มีหลายครั้งที่แม่สามี ไม่ชอบดิฉันเพราะความเข้าใจผิดและความเสียใจ ดิฉันพยายามอย่างหนักในแบบของตัวเอง แต่มันแตกต่างจากลูกสะใภ้เกาหลี ดังนั้นดิฉัน จึงทะเลาะกับครอบครัวบ่อยมาก โดยเฉพาะทะเลาะกับสามีบ่อยครั้งเพราะเรามีแนวคิดเรื่อง “การเลี้ยงลูก” และ “วิธีการศึกษา” ที่แตกต่างกัน กล่าวกันว่าครอบครัวพหุวัฒนธรรมส่วนใหญ่มีความขัดแย้งทางความคิดเนื่องจากความแตกต่างทางภาษา, ขนบธรรมเนียม, และวิธีการ เลี้ยงดู ปัญหานี้ไม่ใช่แค่ปัญหาในครอบครัวของเราแต่เป็นปัญหาของครอบครัวพหุวัฒนธรรมทั้งหมด ดิฉันเลยคิดว่าควรเรียนภาษาเกาหลี ให้หนักขึ้น ดิฉันมั่นใจว่าถ้าเก่งภาษาเกาหลีการสื่อสารกับสามีหรือแม่สามีจะราบรื่นขึ้น จากนั้นเราจะเข้าใจกันและกันอย่างลึกซึ้งมากขึ้น และปัญหาที่เป็นเรื่องยากจะคลี่คลายไปทีละปัญหา การใช้ชีวิตในเกาหลีที่มีความสุขมากยิ่งขึ้น แม้ว่ามีช่วงขึ้นๆ ลงๆ แต่ตอนนี้ครอบครัวของดิฉันอยู่กันอย่างมีความสุขกับสามี, ดิฉัน, และลูกอีก 2 คน ในครอบครัวที่ปรองดองกัน บางครั้งดิฉันรู้สึกเศร้า แต่ถึงกระนั้นดิฉันก็ขอบคุณที่สามีและแม่สามีอยู่เคียงข้างเสมอและดูแลลูกสองคนที่มีค่าของดิฉันด้วยกัน ความปรารถนาของดิฉันคือขอให้บ้านของเราเต็มไปด้วยเสียงหัวเราะและสุขภาพแข็งแรงอยู่เสมอ ดิฉันหวังว่าท่านทั้งหลายจะมีสุขภาพ แข็งแรง และมีความสุขเสมอเช่นกัน
    • 한국어
    • 행사
    • ภาษาไทย
    2022-11-16
  • Брачная мигрантка, которая создала семью, будучи успешным иностранным работником в Корее
    Здравствуйте! Меня зовут Хо Су Джин, я приехала из г.Хошимин на юге Вьетнама. Я родилась и выросла в бедной сельской местности Хошимина. В моей семье было много детей и она испытывала финансовые трудности. Я восьмой ребенок из 10 братьев и сестер. У меня 7 старших братьев и сестер 2 младших. Возможно, из-за того, что у меня много братьев и сестер, я рано повзрослела и с юных лет знала, что наша семья находится в тяжелом положении. Поэтому я решила, что должна усердно учиться, преуспеть и помогать родителям. По этой причине я мечтала поехать в Корею на заработки и, в конце концов я приехала в Корею как иностранный рабочий. Смена визы E-9 на E-7 Когда я впервые приехала в Корею, мне было очень тяжело, потому что погода и еда отличались от моей родной. Кроме того я впервые жила одна вдали от своей семьи, поэтому я очень скучала по родине и семье. Живя в одиночестве в далекой Корее и работая в ночную смену, мое сердце и тело постоянно болели от тоски. Однако у меня была мечта, и, переживая трудные времена, я постепенно привыкала к жизни в Корее. Постепенно привыкнув к жизни в Корее, я подумала, что должна использовать дневное время, которое у меня было, так как я работала ночью, для изучения корейского языка. Поэтому я пошла в Центр поддержки мультикультурных семей и стала усердно изучать корейский язык. Благодаря усердному изучению корейского языка я получила хороший результат на тесте TOPIK и смогла поменять свою визу на E-7, профессиональную рабочую визу. Благодаря этой визе стало возможным дольше оставаться в Корее.   Замужем, но с другими трудностями Какое-то время я не думала о замужестве, потому что мне нужно было зарабатывать деньги, чтобы содержать семью во Вьетнаме. Но как-то я пошла в парикмахерскую постричься, и заведующий парикмахерской сказал, что познакомит меня с хорошим человеком. Он сказал, что этот знакомый — это его давний постоянный клиент и он мой ровесник 1985 года рождения. Через некоторое время мой муж связался со мной, чтобы встретиться, и мы встретились, поужинали и пошли в кафе, чтобы пообщаться. После того нашего первого свидания мы начали встречаться, тк влюбились друг в друга, и решили пожениться, что и сделали спустя 6 месяцев после знакомства. Поскольку я долгое время жила одна вдали от своей семьи, я была очень взволнована и счастлива от мысли, что у меня будет семья в Корее. Но после свадьбы появились другие проблемы. Понимание -важный вопрос Несмотря на это, будучи иностранкой, я все равно недостаточно знала корейский язык, и многого из того, что хотели от меня мой муж и свекровь, я не могла понять. Были времена, когда моя свекровь думала обо мне плохо из-за недопонимания и сожалений. Я очень старалась как могла, но это отличалось от того, что делают корейские невестки, поэтому мы часто сталкивалась лбами с семьей мужа. Особенно мы часто ссорились с мужем из-за того, что у нас были разные представления о "воспитании детей" и "методах воспитания". Говорят, что в большинстве мультикультурных семей существует много конфликтов во мнениях из-за различий в языке, обычаях и методах воспитания. Эта проблема касается не только нашей семьи, это проблема всех мультикультурных семей. Поэтому я подумала, что должен усерднее учить корейский язык. Я мыслю позитивно, что если я овладею корейским языком, мое общение с мужем или свекровью станет более гладким, и тогда мы будем лучше понимать друг друга, а сложные проблемы будут решаться одна за другой. Более счастливая корейская жизнь Было много взлетов и падений, но сейчас у меня есть муж и двое детей и мы живем счастливо. Иногда бывает грустно, но, несмотря на это, я благодарна за то, что мой муж и свекровь всегда рядом со мной и вместе заботятся о двух моих драгоценных детях. Желаю, чтобы наш дом всегда был полон смеха и здоровья. Я желаю вам тоже всегда быть здоровыми и счастливыми.      
    • 한국어
    • 행사
    • Русский
    2022-11-16
  • Một gia đình đa văn hóa của một lao động người nước ngoài thành công tại Hàn Quốc
    Bài viết dưới đây là bài phát biểu của Ho Su-jin đến từ Việt Nam trong tự truyện về chủ đề thích nghi cuộc sống Hàn Quốc của phụ nữ kết hôn nhập cư tại chương trình ‘Gia đình thành phố Gunpo Home coming Day’ được tổ chức vào ngày 5 tháng 11 vừa qua. Chúng tôi xin được phép giới thiệu đến các bạn những gian khó trong quá trình thích nghi với cuộc sống ở Hàn Quốc cũng như những hạnh phúc và hy vọng về tương lai của người phụ nữ kết hôn nhập cư. <Ảnh=Papaya Story>   Xin chào. Tôi tên là Ho Su-jin đến từ TP Hồ Chí Minh, một thành phố thuộc miền nam Việt Nam. Tôi sinh ra và lớn lên ở một vùng quê nghèo của TP Hồ Chí Minh. Gia đình tôi gặp rất nhiều khó khăn về tài chính và đông anh chị em. Tôi là con thứ 8 trong gia đình có 10 anh chị em. Trên tôi có 7 anh trai, chị gái và dưới tôi có 2 em. Có lẽ vì nhà đông anh chị em nên tôi trưởng thành khá sớm và từ nhỏ tôi đã nhận thức được gia cảnh khó khăn của mình. Vì vậy, tôi tự nhủ rằng tôi phải học tập thật chăm chỉ và thành công để có thể giúp đỡ cha mẹ. Vì lý do này, tôi đã mang ước mơ được đến Hàn Quốc để kiếm tiền, và cuối cùng tôi đã có thể đến Hàn Quốc với tư cách là một lao động người nước ngoài.   Chuyển đổi từ visa E-9 sang E-7 Những ngày đầu tiên khi đến Hàn Quốc, tôi đã gặp rất nhiều khó khăn vì thời tiết và thức ăn khác biệt so với quê hương của tôi. Và đây cũng là lần đầu tiên tôi sống một mình xa gia đình nên tôi nhớ quê hương và gia đình vô cùng. Sống một mình nơi đất khách xa xôi và làm việc ca đêm trong suốt một thời gian đã khiến cả tâm hồn và thể xác tôi thường xuyên đau bệnh vì nhớ nhung. Nhưng trong tôi có ước mơ và trong khoảng thời gian vượt qua khó khăn đã giúp tôi dần quen với cuộc sống ở Hàn Quốc. Khi tôi dần quen với cuộc sống ở Hàn Quốc, tôi nghĩ rằng mình nên tận dụng thời gian ban ngày để học tiếng Hàn vì tôi làm việc ca đêm. Vì vậy, tôi đã đến Trung tâm hỗ trợ gia đình đa văn hóa và cố gắng chăm chỉ học tiếng Hàn. Nhờ chăm chỉ học tiếng Hàn mà tôi đã đạt điểm cao trong kỳ thi TOPIK và đã có thể đổi sang visa lao động lành nghề E-7. Nhờ có visa này mà tôi đã có thể lưu trú tại Hàn Quốc lâu hơn.   Lập gia đình nhưng còn có khó khăn khác Tôi đã không nghĩ đến chuyện hôn nhân trong một thời gian khá dài vì tôi cần kiếm tiền để giúp đỡ gia đình ở Việt Nam. Rồi một hôm, tôi đến một tiệm làm tóc để làm tóc, thì chủ tiệm nói sẽ giới thiệu cho tôi một người tốt. Người đó là một khách quen của chủ tiệm, anh ấy sinh năm 85, bằng tuổi tôi. Chắc có lẽ là do duyên số, một thời gian sau, chồng tôi đã liên lạc để gặp tôi và chúng tôi đã gặp nhau ở gần nhà, ăn tối và đi uống cà phê để có thể tìm hiểu về nhau nhiều hơn. Sau buổi gặp đầu tiên như thế, chúng tôi bắt đầu hẹn hò với mục đích tiến tới hôn nhân và sau đó chúng tôi đã kết hôn sau 6 tháng yêu nhau. Vì tôi đã sống một mình xa gia đình trong một thời gian dài, tôi rất háo hức và hạnh phúc khi nghĩ rằng mình sẽ có một gia đình ở Hàn Quốc. Nhưng sau khi kết hôn, đã có những khó khăn khác xuất hiện cho đến thời điểm hiện tại.   Giao tiếp là một vấn đề quan trọng Vì là người nước ngoài, lại không thông thạo tiếng Hàn nên tôi nghĩ mình chưa hiểu ý của chồng và mẹ chồng. Cũng có lúc mẹ chồng không hài lòng về tôi vì những hiểu lầm đáng tiếc. Tôi đã rất cố gắng theo cách của mình nhưng khác với con dâu Hàn Quốc nên đã có nhiều xung đột với gia đình chồng. Đặc biệt, tôi thường xuyên cãi vã với chồng vì chúng tôi có những quan điểm khác nhau về 'Nuôi dạy con cái' và 'Phương pháp giáo dục'. Có nhiều ý kiến cho rằng, hầu hết các gia đình đa văn hóa đều có nhiều xung đột quan điểm do khác biệt về ngôn ngữ, phong tục tập quán và phương pháp nuôi dạy con cái. Và vấn đề này không chỉ là vấn đề của gia đình chúng tôi, mà là vấn đề của tất cả các gia đình đa văn hóa. Vì vậy, tôi nghĩ rằng tôi nên học tiếng Hàn chăm chỉ hơn nữa. Tôi lạc quan tin rằng nếu tôi giỏi tiếng Hàn, tôi sẽ có thể giao tiếp với chồng hoặc mẹ chồng suôn sẻ hơn, chúng tôi sẽ có thể hiểu nhau sâu sắc hơn và sẽ có thể từng bước một giải quyết được những vấn đề khó khăn.   Cuộc sống Hàn Quốc hạnh phúc hơn Dù đã trải qua nhiều thăng trầm nhưng hiện tại chồng tôi, tôi và hai con đang cùng chung sống rất hạnh phúc trong một gia đình hòa thuận. Đôi khi tôi cũng chạnh lòng, nhưng dù sao thì tôi cũng rất biết ơn vì chồng và mẹ chồng đã luôn ở bên và cùng nhau chăm sóc hai đứa con yêu quý của tôi. Mong ước của tôi là gia đình chúng tôi sẽ luôn khỏe mạnh và tràn ngập tiếng cười. Và tôi hy vọng tất cả mọi người cũng sẽ luôn khỏe mạnh và hạnh phúc.
    • 한국어
    • 행사
    • Tiếng Việt
    2022-11-16
  • A lot of real estate regulations in the metropolitan area have been loosened... The ratio of mortgage loans rises
    The Korean government has lifted all restrcted areas nationwide except Seoul, Gwacheon, Gyeonggi-do; Seongnam (Bundang, Sujeong), Hanam, and Gwangmyeong from real estate regulated areas. An important implication of the deregulation is that more loans can be secured against a house. As a result, nine locations of Gyeonggi provinces, which were tied up as speculative overheated districts, were released. Suwon, Anyang, Ansan Danwon, Guri, Gunpo, Uiwang, Yongin Suji/Giheung, and Dongtan 2 are the targets. Accordingly, all of Seoul and only Gwacheon, Seongnam (Bundang, Sujeong), Hanam, and Gwangmyeong remained as double regulation areas, including the speculative overheating district and the adjustment target area. What does deregulation mean? The regulation that receives the strongest sanctions is the speculation area, but the speculation area is only applicable to some areas such as Gangnam in Seoul. However, this is the principle, and exceptions apply to homeless people and single-homeowners. It is best to inquire with a real estate agent for more detailed mortgage loan ratios. Because it changes too often. In areas that have been completely lifted from these restrictions, you can borrow up to 90% of the house price to buy a house. Some small apartment complexes are 100% available. Are you surprised? Of course, it depends a little bit on what the developer who built the house and the financial institution negotiate. Papaya Story
    • 한국어
    • 행사
    • English
    2022-11-14
  • 수도권의 부동산 규제 대거 풀렸다...주택 담보대출 더 많이 가능^^
        한국 정부가 서울과 경기 과천, 성남(분당·수정), 하남, 광명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을 부동산 규제지역에서 해제했어요. 규제 해제의 중요한 의미는 집을 담보로 받을 수 있는 대출이 많아진다는 것이에요. 이에 따라 투기과열지구로 묶여 있던 경기도 9곳이 해제됐어요. 수원, 안양, 안산단원, 구리, 군포, 의왕, 용인수지·기흥, 동탄2가 대상이에요. 이에 따라 서울 전역과 과천, 성남(분당·수정), 하남, 광명 4곳만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등 2중 규제지역으로 남게 됐어요. ????규제 해제는 어떤 의미????? 가장 강력한 제재를 받는 규제가 바로 투기지역인데 투기지역은 서울의 강남 등 일부 지역만 해당이 돼요. 하지만 이게 원칙이고 무주택자와 1주택자에게는 예외가 적용돼요. 자세한 담보대출비율은 부동산중개업소 등에 문의하는게 좋아요. 왜냐면 너무 자주 바뀌기 때문이에요.    이런 규제에서 완전히 해제된 지역은 집값의 최대 90%까지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살 수 있어요. 어떤 빌라는 100%도 가능하다고 해요. 놀랍지요? 물론 주택을 지은 시행사와 금융기관이 협의하는 바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요.
    • 한국어
    • 행사
    • 전체
    2022-11-14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