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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로 지역사회와 외국인주민을 잇는 ‘엉묘진’ 반장(2)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 ‘우리 곁의 외국인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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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2.0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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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 자료집


국내 최고의 외국인주민 인권 옹호 기관인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소장 오경석)는 지난해 12월 ‘2018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경기도, 우리에게 맡겨요’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에 가득 차 있는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기 위해 기획됐다. 사회 문화적으로 낯선 이주의 공간에서, 길지 않은 시간에,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외국인주민을 발굴해 소개하는 작업은 우리 곁의 이주민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일곱 명의 이주민들을 따라가 보자.


#어려움 속, 짧은 시간, 이룬 게 많으시네요. : 그냥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엉묘진은 2년여, 그러니까 한국 생활의 거의 절반 정도는 ‘눈물이 날 정도로’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 그리고 짧은 시간에, 그가 이룬 성취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일단 그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미얀마 양곤에서 의상 사업을 시작했다. 미얀마의 전통 의상을 디자인하고 제작하고 판매하는 일을 한다. 현재 3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으며 매니저는 동생이다. 사업을 시작한 지는 2년 정도인데 “어느 정도 잘 되고” 있는 중이다.

 

그는 한국에서 직접 디자인 보내는 일을 한다. 그리고 ‘미얀만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플랜’을 짜는 일도 그의 몫이다. 그는 앞으로 이 사업을 ‘더 크게’ 키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

 

경제적인 성취와 전망 이외에 비영리 영역 곧 사회적 참여와 기여라는 분야에서도 그의 성취는 괄목할 만하다. 어려서부터 어려운 친구들을 도와주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엉묘진이지만, 누군가를 돕는 일을 체계적으로 해 본적 역시 없는 그였다. 

 

한국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 공간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경험한 일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공동체’ 활동을 꼽는다. 어려움에 처한 “미얀마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보람 있었다.”고 자부한다. 

 

불법체류자 단속에 억울하게 희생될 뻔한 동료 노동자를 다양한 관계기관과 주한 미얀마 대사관과의 협업을 통해 구제한 일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신의 어려움이 반복되지 않게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그의 활동을 통해 평택에 미얀마 사원과 쉼터가 설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얀마 현지에 NGO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사회적 기업가’라는 자신의 새로운 꿈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가 한국에서 이룬 또 하나의 성취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전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에게 한국은 오기 싫었을 뿐만 아니라, 시련과 어려움의 공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5년여의 한국 생활은 그러한 그의 생각을 바꿔주었다. 이제 그에게 한국의 어느 도시는 고향처럼, 혹은 고향보다 더욱 좋은 곳이다.

 

“평택도 미얀마처럼 좋아하는 도시에요. 우리 어렸을 때 사는 고향보다 좋아해요.”

 

꾸준함은 용감함을 필요로 해요 : 맨 처음 왔을 때부터 한 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흔히 한 곳에 정주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은 정적이거나 경쟁력이 떨어진다(선택지가 적다)고 생각하기 쉽다. 현재 엉묘진의 직장은 그가 한국에 입국해 첫 입사한 첫 직장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4년 10개월간 그는 단 하나의 직장에서만 종사한 셈이다.

“한국에 맨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첫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어요.”

 

그러나 그는 결코 무력하거나 정적이거나 순응적인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4년 10개월을 한 직장에서 근무한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 정부가 이러저러한 재취업의 기회를 주고 있음에도, 주저 없이 미얀마 귀환을 선택하는 것이 그였듯이, 별로 좋은 조건이 아님에도 한 회사를 선택하는 것도 그다.

 

“이 회사는 연장이나 야간 휴일근로가 전혀 없어서 생각보다 돈을 적게 벌어요.”

 

한 회사에 꾸준히 근무함으로써, 돈을 좀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두 가지다. 사회 활동과 자기 계발이다.

 

잔업이나 휴일 근무를 안 함으로써 생기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을, 그는 결코 여흥이나 유흥의 시간으로 보내지 않았다. 한국어 공부와 이주노동 관련 법 공부에 전념했다.

 

“한국말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한국말 잘하고, 법도 배운다면, 70% 정도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고, 저보다 더 고생하는 불쌍한 사람들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사회 활동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공동체와 쉼터를 만들었고, 주말마다 동료들과 거리 청소를 함께 했다. 그 결과 그는 돈으로 구할 수 없는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한 가지는 사회자본, 곧 신뢰다. 그는 친구가 많다. 

 

몇 달 뒤 미얀마 귀환을 앞두고 있는 그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사람만도 15명에 이른다. 다른 한 가지는 차별에 대항하는 능력이다.

 

엉묘진의 회사에는 근로자들을 홀대하는 ‘난폭한’ 한국인 관리자가 종사한다. 엉묘진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의 부당한 지시나 언행에 담대하게 맞선다. 어느 순간부터 관리자는 더 이상 엉묘진을 괴롭히지 않는다. 꾸준한 사람이 되려면, 용감한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을, 엉묘진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 관리자가 4년 10개월 동안 계속 있었어요. 지금은 저한테는 시키지 않아요. 저도 안하고.”


#돈이 전부는 아니죠. :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때문에 피곤하지 않았어요.


엉묘진은 한국에 입국한 지 불과 1년만인 2015년 4월 미얀마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100명 이상의 회원이 참가하였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엉묘진의 공동체는 한국의 미얀마 공동체들 가운데서도 ‘모범적으로 운영’ 되는 곳으로 평가받는다. 

 

공동체는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회원들의 경조사를 챙기고, ‘10월 부추제’와 같은 미얀마 전통 축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회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미얀마 사람들의 삶의 구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원 겸 쉼터도 운영한다.

 

공동체 활동은 회원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주말 거리청소 등 지역 봉사에 참가한다. 2015년 미야우리 지역에 홍수가 났을때는 8백만원 정도의 피해 구제 기금을 마련해 지원한 적도 있다. 

 

미얀마 낙후 지역의 고아 및 한부모 가정 자녀들을 위한 보육원 지원 활동도 수행한다. 어린이 도서관과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는 쉬바다이 NGO설립도 공동체 활동이 매개가 되었다. 공동체 창립의 과정은 엉묘진 개인의 열정과 의지에 크게 의존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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