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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생활 11년 동안 적응하느라 ‘애썼다... 고생했다...’

군포시가족센터, ‘홈커밍 데이’ 결혼이주여성 한국적응수기 발표① 박미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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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11.1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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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지난 11월 5일 진행된 ‘군포시 가족 홈커밍 데이’에서 중국 출신 박미향 씨가 결혼이주여성 한국적응수기를 발표한 내용입니다. 한국생활에 적응하느라 힘겨웠던 결혼이주여성의 삶과 행복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잘 드러낸 글로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사진=파파야스토리>

중국, 일본, 한국

저는 중국 심양에서 온 박미향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온 지 11년 되었고 결혼 10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저는 중국 소수민족 조선족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조선족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대학은 산동성에 있는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때 전공은 일본어였고 졸업 후 바로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일본 대학원에서 일본어를 전공했습니다. 4년 동안 일본에서 대학교 수업 후 알바를 여러 개 하면서 생활비, 학비, 유학자금까지 전부 혼자 마련했습니다. 힘들었지만 정말 재미있고 가장 많이 성장했던 기간이었습니다.

남편과의 만남

2011년 저는 중국에 있는 친구 소개로 현재 남편과 이메일로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1년 5월쯤 처음 일본 나고야에서 관광을 하러 온 남편과 만났습니다. 3박 4일 동안 친구처럼 함께 관광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남편이 너무 편해서 한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남편이 한국으로 들어가는 날 저는 너무 슬퍼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 후부터 남편이랑 저는 한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남편을 축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학력과 재산 등 남편의 상황은 좋은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어떤 조건이든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애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일본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결혼 9년 동안 남편은 회사 다니면서 대학교를 졸업했고 연봉 또한 쭉쭉 올랐습니다. 현재 우리 집도 있고 건강하고 예쁜 아들도 있습니다.

한국생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중국에서 한국어를 배웠기 때문에 한국생활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생활해 보니 전혀 아니었습니다. 언어, 문화 등 너무 달라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었습니다.

일단 언어의 장벽을 느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어를 접했지만, 일상생활에서 한국어를 쓰지 않다 보니 억양, 언어 선택, 표현 등이 엄청 서툴렀습니다. 일본에서 바로 생활하고 오다 보니 말하려고 하면 일본어 또는 중국어가 먼저 입에서 나왔습니다. 가끔 한국분들이 일본, 북한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한국말을 할 때마다 쑥스러웠지만 일단 사람들 보면 계속 이야기를 하려고 했고 뉴스 등을 보면서 한국어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가 차츰차츰 좋아졌습니다.

허무함과 아쉬움

저는 작년 11월에 9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고 1년 휴직 기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쉬면서 지난 11년 생활을 뒤돌아보니 뭔가 아쉬움과 허무함이 남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를 위한 꿈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저라는 사람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1년이 지난 현재 저는 무려 5개의 꿈이 생겼습니다. 이 새로운 꿈을 생각하면 정말 행복하고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나의 5가지 꿈

코로나로 인해 작년 연말부터 아들이랑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작년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총 27번 등산을 했습니다. 아들이랑 등산하면서 1년 사계절 산의 변화를 느끼면서 수다 떠는 게 정말 재미있고 행복합니다. 저는 할머니가 되어도 아들이랑 같이 100번 1000번 등산하자고 약속했습니다. 등산은 저랑 아들의 공동 취미이자 꿈이 되었습니다.

저는 등산이나 나들이를 가면 사진 찍기를 좋아합니다. 사진을 많이 찍다 보니 사진이 재미있고 인생 사진이 나오면 정말 뿌듯합니다. 내년에 중고 카메라를 사서 전문 사진작가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나중에 아들 그리고 제 가족의 일상을 많이 찍어서 소중한 추억 앨범을 만들고 싶습니다.

또한 저는 올해 어린이집 놀이치료 활동에 참가한 계기로 심리학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을 접하면서 저는 제가 자존감이 낮고 살짝 우울증세가 있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울증 치료 및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부부 상담도 받고 있습니다. 부부 상담을 통해 남편의 아픈 마음을 알게 되었고 저 또한 마음의 근육이 생겨 현재 부부 생활이 더 좋아졌습니다. 저는 앞으로 심리학 공부를 통해 제 가족의 상담 치유사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글쓰기도 좋아합니다. 앞으로 아들이랑 등산한 내용, 제가 사진작가가 되는 과정, 심리학 상담사가 되는 과정을 글로 남겨 볼까 합니다. 그리고 60세가 되기 전 저의 책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2년 전부터는 코딩 공부를 독학했습니다. 코딩이 어느 정도 되면 아들을 위한 사이트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 사이트에는 제가 이쁘게 찍은 사진과 글로 아들의 성장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애썼다. 고생했다”

저는 한국에서 11년 동안 나름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지금 이 시각부터는 나만의 행복을 위해 조금은 여유 있게 남은 인생을 살아 볼까 합니다. 그리고 저한테 마지막으로 “미향아, 한국 생활 적응하느라 참 애썼다. 고생 많았다”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제 작은 꿈들을 하나하나씩 실천하면서 즐겁게 살아 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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