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0-18(금)

노동자에서 사업가로, 사회활동가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사하닷’(1)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 ‘우리 곁의 외국인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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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8.06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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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의 외국인주민 인권 옹호 기관인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소장 오경석)는 지난해 12월 ‘2018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경기도, 우리에게 맡겨요’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주노동자 리더십 발굴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에 가득 차 있는 이주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기 위해 기획됐다. 사회 문화적으로 낯선 이주의 공간에서, 길지 않은 시간에, 성공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외국인주민을 발굴해 소개하는 작업은 우리 곁의 이주민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일곱 명의 이주민들을 따라가 보자.

프롤로그…
사하닷은 방글라데시 브라만바리아 출신의 이주노동자이다.(사진 아래 오른쪽)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엘리트인 그는 대학원 졸업 후 금융회사에서 1년 정도 근무하다 2008년 한국에 입국했다.

입국 초기 여느 이주노동자와 다름없이 그 역시 경제, 사회, 문화적 차별이라는 혹독한 적응기를 경험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노동자들과 달랐다. 한 번도 어렵다는 두 번의 비자변경에 성공해 취업과 가족동반이 자유로운 ‘거주’ 이주민 자격(F-2)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10년 전 노동자였던 사하닷은 이제 사업가요, 사회활동가이기도 하다. 그가 단순한 적응을 넘어 좀 더 큰 자유를 갈망했던 이유는 한국을 단순한 이주의 공간이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한국은 앞으로 가족과 함께 살아갈 ‘친절하고 아름다운 나라’이다. 그는 친절하고 아름답지만 고향의 문화와는 70퍼센트 이상이 다른 이 나라에서, 방글라데시 동료 노동자들이 조금이나마 어려움을 덜 겪으며 꿈을 이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자신의 사업만큼이나 그들을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선다.

동료들에게 그는 믿음직한 한국 생활의 길잡이요, 안내자이다. 특히 그는 열렬한 사회통합 프로그램 전파자이다. 그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한국에서 자라고 있는 방글라데시 아이들을 위한 교육 시설을 운영하는 것이다.

살기 편하지만 오기 힘든 나라 :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사하닷은 2008년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첫 발을 디뎠다. 그는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방글라데시의 엘리트이다. 졸업 후 1년여 금융회사에 근무했던 그가 한국행을 택한 이유는 간명하다. 방글라데시의 상황이 젊은 엘리트들에게도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기 어려울 정도로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방글라데시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한국의 70~80년대 정치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일자리도 없고, 취업을 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지요.”

한국에서 지낸 지난 10여년 그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0년 잠깐 귀국하여 취업 준비 기간 자신을 헌신적으로 보필해주었던 아내와 결혼하였다. 2014년 말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이 꿈꾸는 비자 변경, 그것도 두 번이나 연속으로 성공하였다.

그 결과 그의 위상은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E-9)에서 ‘전문인력’(E-7)으로, 전문 인력에서 취업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부여받는 ‘거주민’의 지위(F-2)로 격상되었다. 그는 이제 자유롭게 직업을 바꿀 수 있다. 고용될 수 있는 자유 뿐 아니라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는 자유도 있다. 가족을 초청해서 함께 살 수도 있다.

그는 그러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하던 사업을 잠시 접고 현재는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조만간 가족들과 재결합할 것이고, 그 때에는 다시 사업에 전념할 계획이다.

그에게 한국은 이제 이처럼 ‘살기 편한 곳’이고 ‘사람들도 다 친절’한 곳이다. 물론 어려움이 없었을 리 없다. 현재의 자유와 편안함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국 사회에 적응’을 이미 끝낸 사하닷이기에 누릴 수 있는 보상일 것이다.

그는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그렇지만 오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 방글라데시 동료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눠주고 싶어 한다. 그들의 한국 생활 도우미요,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싶어한다.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방글라데시 사람이 많은데, 과거보다 더 어려워졌어요. 제가 올 때보다 10배 가량이나 어려워졌어요. 돈이 많고, 공부를 많이 해도 한국에 입국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어렵게 한국을 선택한 그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희망의 공간 한국 그러나 : 한국일은 어렵고 힘들어요
다른 나라로 이주를 선택한 방글라데시 사람들 조차 희망할 정도로 한국은 인기있는 이주의 목적국이다. 그러나 ‘희망의 공간’은 어려움과 난관을 이겨낸 사람들에게는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한국 적응은 끝났다.”라고 사하닷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지난 10여년의 한국 생활 동안 그만큼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경험하고 그를 극복 혹은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자’로서 사하닷은 가스밸브 제조회사, 고무공장, 스폰지 제조공장, 농기구제조업체 등에서 일한 바 있다. 그 곳에서 그가 경험한 ‘어렵고 힘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 번 째 사업장의 고용주는 계약과는 다르게 그에게 지사 근무를 강요했다.

혹독한 노동 조건과 노동 강도는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공통적이었다. 고무 공장의 유독가스는 견디기 어려웠다. 농기구제조업체의 페인트 작업은 특수마스크를 착용하고도 한 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이나 안전 장구는 사비로 구매해야만 한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혹독한 조건에서, 하루 열네시간에 가까운 고강도 노동을 감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예외 없이 처우와 승진에서의 차별과 불이익을 경험해야만 한다. 사하닷의 경우 퇴직금 지급을 거부하는 사업주를 노동부에 진정해서, 일부를 받아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승진에서의 차별은 그에게도 여전히 ‘넘사벽’의 장애물이다.

“5년 이상 일을 잘 했는데요, 한국사람 및 다른 외국인과의 차별이 있어서 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인과 중국인의 경우는 2년만 지나도 반장이나 과장으로 승진을 시켜주었는데, 방글라데시 사람들이나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사하닷은 방글라데시 동료들에게 ‘희망의 공간’의 현실을 분명히 말해준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어요.”

방글라데시와 한국문화는 70% 이상 다르다고 생각해요 : 조심해!
사하닷이 평가하기에, 한국 문화와 방글라데시 문화 사이에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훨씬 크다. 그러한 문화적 차이가 결정적인 어려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 그것은 ‘조심’이다.

그래서 한국에 처음 온 동료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게 그가 맨 처음 하는 말은 “조심해!”이다. 가장 많이 하는 말 역시 “조심해!”이다. 그가 경험적으로 터득한 ‘조심’의 목록에는 ‘노동 규율, 법질서, 추위, 음식 및 회식 문화’ 등이 포함된다.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노동 규율이다. 사업장 내에서의 안전이다. 주지하다시피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율은 한국인 노동자의 무려 6배에 달한다. 낯선 사업장에서의 정보 부족이 외국인 산재를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사하닷은 공장에서 서두르지 말고 조심할 것을 가장 강조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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